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 장안사(長安寺)
[광고]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장안사 (長安寺)
북한의 금강산 장경봉 아래에 있는 큰 절. 북한 보물급 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장안사 (長安寺) 금강산 4대 사찰 가람 배치 고려 대장경 불교 화엄 십찰 31 본산 삼보사찰 고운사 금강산 금산사 내장사 대흥사 동화사 마곡사 백양사 범어사 법주사 봉정사 부석사 불국사 불영사 석왕사 선운사 송광사 수덕사 신흥사 쌍계사 연곡사 월정사 조계사 직지사 통도사 표훈사 해인사 화엄사 태안사 기림사 쌍봉사 이불란사 초문사 375년 이차돈 전등사 수종사 삼화사 용주사 강천사 봉은사 유점사 석굴암 석굴 경주 흥륜사지 봉선사 법흥사 청량사 보탑사 청평사 건봉사 운주사 신계사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 참조 원문/전문
관동팔경답파기 關東八景踏破記 근/현대 수필 김상용 (40)
▣ 시민참여콘텐츠
◈ 인기순 (1 ~ 4 위)
2024.05.23
만덕 방문 30여 년 전 친구들과 다녀와...당시 체험 바탕 ‘김신선전’ 소설 써
【문화】 연암 박지원과 금강산 비로봉 장안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법당, 종루, 요사채, 장경고, 삼문을 세웠다. 유람객들은 장안사 산내 암자로 지장암, 안양암과 영원암, 금장암을 많이 찾았다. 지장봉에 위치한 영원암(靈源庵)은 신라의 영원조사가 창건한 암자로 금강산 일원에서 가장 맑고 고요한 수도처로 소문나 한 철 지내러 오는 선객이 많았다.
2024.05.07
김유신 사찰 참배, 신라왕실 기도해 삼국통일 깊은 도량...금강팔경도 병품 관람
【문화】 김만덕 금강산 사찰 순례 2-신계사 신계사(神溪寺)는 장안사(長安寺), 유점사(楡岾寺), 표훈사(表訓寺)와 더불어 금강산 4대 사찰이다. 만덕은 온정리를 지나 관음봉과 문필봉 사이에 있는 극락 고개를 넘어 신계사를 참배했다.
2024.05.13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대웅보전 감탄...맑은 종소리에 깊은 환희심 빠져
【문화】 김만덕 금강산 사찰 순례 4-장안사 김만덕 일행은 금화 금성을 거쳐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보고는 철이현(鐵伊峴) 고개를 넘어 내금강 장안사를 항해 천천히 내려갔다. 승려가 만덕에게 장안사의 역사에 대하여 길게 설명을 해주었다.
2024.05.20
만덕, 장안사 보물 ‘변상도’ 본 뒤 환희심 생겨...한양 도령과 금강산 절경 반해 시 지어 노래해
【문화】 황진이 金剛山 상사몽(相思夢) 만덕은 장안사 지장암(地藏庵)을 방문하고 돌아와 공양간에 들렸다. 보살은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산책하러 간다고 해 만덕은 같이 가기로 했다. 보살은 걸어가면서 옛날 황진이가 장안사에 머문 일을 아주 구수하게 설명을 해줬다. 특히 계곡과 산봉우리 관련, 내용도 만덕에게 들려주었다. 만덕은 황진이가 기생 출신인 것을 몰랐다. 당시 금강산은 선비들이 주로 찾아 여자가 금강산을 찾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 등록순
2024.06.14
4. 금강산 장안사를 찾아서
【문화】 오늘은 노정(路程)을 바꿔서 서울서 철원(鐵原)을 거쳐서 창도(昌道)를 지나 내금강(內金剛)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여 장안사(長安寺)로 가보려고 한다.
2024.05.23
만덕 방문 30여 년 전 친구들과 다녀와...당시 체험 바탕 ‘김신선전’ 소설 써
【문화】 연암 박지원과 금강산 비로봉 장안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법당, 종루, 요사채, 장경고, 삼문을 세웠다. 유람객들은 장안사 산내 암자로 지장암, 안양암과 영원암, 금장암을 많이 찾았다. 지장봉에 위치한 영원암(靈源庵)은 신라의 영원조사가 창건한 암자로 금강산 일원에서 가장 맑고 고요한 수도처로 소문나 한 철 지내러 오는 선객이 많았다.
2024.05.20
만덕, 장안사 보물 ‘변상도’ 본 뒤 환희심 생겨...한양 도령과 금강산 절경 반해 시 지어 노래해
【문화】 황진이 金剛山 상사몽(相思夢) 만덕은 장안사 지장암(地藏庵)을 방문하고 돌아와 공양간에 들렸다. 보살은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산책하러 간다고 해 만덕은 같이 가기로 했다. 보살은 걸어가면서 옛날 황진이가 장안사에 머문 일을 아주 구수하게 설명을 해줬다. 특히 계곡과 산봉우리 관련, 내용도 만덕에게 들려주었다. 만덕은 황진이가 기생 출신인 것을 몰랐다. 당시 금강산은 선비들이 주로 찾아 여자가 금강산을 찾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2024.05.13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대웅보전 감탄...맑은 종소리에 깊은 환희심 빠져
【문화】 김만덕 금강산 사찰 순례 4-장안사 김만덕 일행은 금화 금성을 거쳐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보고는 철이현(鐵伊峴) 고개를 넘어 내금강 장안사를 항해 천천히 내려갔다. 승려가 만덕에게 장안사의 역사에 대하여 길게 설명을 해주었다.
2024.05.07
김유신 사찰 참배, 신라왕실 기도해 삼국통일 깊은 도량...금강팔경도 병품 관람
【문화】 김만덕 금강산 사찰 순례 2-신계사 신계사(神溪寺)는 장안사(長安寺), 유점사(楡岾寺), 표훈사(表訓寺)와 더불어 금강산 4대 사찰이다. 만덕은 온정리를 지나 관음봉과 문필봉 사이에 있는 극락 고개를 넘어 신계사를 참배했다.
 
▣ 참조 카달로그
◈ 참조 키워드
금강산 (8) 백과 김만덕 (4) 백과 신계사 (3) 백과 표훈사 (3) 백과 금강산 4대 사찰 (2) 백과 유점사 (2) 백과 회양군 (2) 백과
▣ 백과사전
북한의 금강산 장경봉 아래에 있는 큰 절. 북한 보물급 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절은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하였다는 설과 진흥왕 때인 551년 고구려의 승려 혜량(惠亮)이 신라에 귀화하면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773년 율사 진표(眞表)가 고쳐 지었고, 970년 화재로 불에 탄 뒤 12년 동안 폐허로 있다가 982년 선사 회정(懷正)이 토지 150결을 보시받아 다시 지었다.
 
1343년 고려 사람으로 원나라 순제(順帝)의 왕후가 된 기씨(奇氏)가 황제와 태자를 위하여 금 1,000 정과 공인들을 보내 퇴락한 대웅보전·사성전·명부전 등 낡은 건물을 고쳐 짓게 하였다. 1458년에는 세조가 이 절에 행차하여 대웅전을 고치도록 명하고 토지를 하사하였다. 그러나 1477년 화재가 발생하여 모두 불타 버림에 따라, 1483년 나라에서 금 3,000관과 백미 500석을 지원받아 일청(一淸)이 다시 지었다. 1537년 다시 불타 1545년 일청이 또 다시 짓고, 1728년과 1791년에도 누각을 새로 짓거나 낡은 건물을 고쳤으며, 1842년 부원군 조만영(趙萬永)이 금 250관을 보시하여 300여 칸의 대찰로 증축되었다. 1863년에는 세도 정치로 기세를 떨치던 호조 판서 김병기(金炳冀)가 왕에게 청하여 공명첩(空名帖) 500장을 발행하여 팔고, 자신이 1,200냥을 보시하여 보수하였다.
 
이 절은 8·15 광복 이전까지는 6전(殿)·7각(閣)·2루(樓)·2문(門) 외에 부속 암자로 장경암·안양암·지장암·영원암 등을 가진, 금강산 4대 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모두 불타 버려 지금은 옛 건물의 축대와 이율곡의 글을 새긴 비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문화재로는 기왕후가 절을 새로 지을 때 비로나자불을 비롯하여, 53위의 불상, 1만 5,000위의 보살상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다.
[광고]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기본항목(E)
내서재 추천 : 0
▣ 카달로그 작업
관련 의견 모두 보기
자유 의견
▶ 지식지도
원문/전문
시민 참여 콘텐츠
▷ 관련 동영상 (없음)
▣ 참조정보
백과 참조
우리나라의 사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