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7 ~ 1919] 판소리 명창. 전라 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후기 8 명창 가운데 한 사람이다.
좋은 소리 를 가지고 태어났고, 음악적인 재능도 있어서 어려서부터 소리를 잘하였다. 12세 때부터
박유전의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박유전에게 5년 동안 배우고, 5년 동안 발성 훈련을 하여 목을 얻었다. 젊어서
전주 대사습 놀이에 참가하였는데, 도중에 사설을 잊어버려 낙방한 뒤 실망하였으나 열심히 연습하였다. 이 때의 일을 기회로
신재효를 찾아가 2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신재효에게서 판소리 이론과 사설도 익혔다. 그 뒤 다시 대사습 놀이에 출연하여 크게 이름을 날렸다.
제자로는
원각사 시절에 활약한
김창환과 그 뒤의
정정렬·
김정길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창조적인 소리꾼이었기 때문에 정창업의 소리가 얼마 만큼 전승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서편제로 소리하였고, 계면조(단조)를 주로 하여 소리하되 상하성을 자유 자재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희로 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였다.
그의 장기는 《흥보가》와 《심청가》였다. 특히,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가 딸 청을 잃고 사립문을 붙든 채 탄식하는 대목은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한다. 그가 이 대목을 너무나 슬프게 불러서 청중이 손으로 눈물을 닦아 비석에 뿌렸더니 물이 흘렀다고까지 한다. 그래서 " 정창업의 소리에는 비석도 운다." 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 대목은 큰아들 정학진을 거쳐 손자인 정광수에 이어지고 있다.
그의 더늠으로 《심청가》에서 중이 내려오는 대목이 《조선 창극사》에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