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4 ~ 1592] 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 호는 중봉(重峰) 또는 도원(陶原)이고,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156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주 교수 및 교서관 정자를 지냈다. 한때
동인을 공박하다가 미움을 사서 귀양 갔으나,
정여립 사건 때 동인이 정권을 빼앗기자 풀려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모아 승병들과 함께 왜군에게 빼앗긴 청주를 다시 찾았으나, 그 후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이의 제자로서 그의 학문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죽은 뒤 영의정 벼슬을 내렸다.
저서로 《중봉집》 《중봉동환봉사》 등이 있다.
선조 26년 2월에 승병(僧兵)
영규와 합세하여 금산의 왜적과 싸우다가 함께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