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1852 러시아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번역가. 툴라주에서 태어났다. 모스크바 대학 부속 귀족 기숙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서유럽 문화, 특히 영국· 독일의 주정주의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전기 낭만파를 대표하는 최초의 시인이 되었다. 또 1802년에 영국의 시인 T. 그레이의 《묘반의 애가》를 《마을의 묘지》로 번역하여 시단에 데뷔하였다. 러시아 주정주의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의 질박한 삶과 도덕적 건전함, 그리고 농촌의 자연미를 도시 귀족들의 퇴폐적인 모습과 대비시켜 묘사하였다. 1808년, 독일의 뷔르거와 노발리스 등의 영향을 받아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약간은 괴기스럽기까지 한 《뤼드밀러》와 《스베틀라나》를 발표하였다. 1912년에 나폴레옹의 침입을 맞아 러시아 국민군에 참가하여 지은 애국적 송시 《러시아 용사의 진영에서 노래하는 시인》을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1926년부터는 황제인 알렉산드르 2세의 가정 교사가 되어 시단에서는 다소 멀어졌다. 1941년 궁중에서 물러난 뒤 주로 독일에 머물면서 인도·페르시아의 서정시와 호메로스의 《오딧세이》 등을 번역하였다. 온화한 염세주의와 종교적인 체념, 내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등이 잘 나타나 있는 그의 작품들은 같은 시대 영국과 독일 작가인 G. 뷔르거·F. 실러·J.W. 괴테·G. 바이런 등의 시를 번역 또는 번안한 것이 많다. 그가 개척한 시적 전통은 F.I. 튜체프·M.I. 레르몬토프·A.A. 페트 등에게 이어졌으며, 19세기 시인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저녁 때》(1806) 《바다》(1822) 등의 서정시와, 《잠자는 12인의 처녀》(1917) 등의 발라드, 그리고 민화시 《이반 왕자와 회색 이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