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유럽의 철학. 로마 제국의 국교가 크리스트교로 된 이후에서부터 15세기 르네상스가 부흥하기 이전까지의 철학적인 형식과 내용을 통틀어서 중세 철학이라고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교부 철학과
스콜라 철학을 일컫기도 한다.
좁은 뜻으로서 중세 철학은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는 것을 고대의 종말로 규정하고 이후를 중세로 보는 역사학적인 구분에 근거하여 5세기 말로부터 15세기에 걸친 약 1,000년 동안의 서양 철학을 의미한다.
중세는 철학보다는 크리스트교 사상이 우위에 있었던 때였다. 철학은 이성을 통한 독창성 있는 학문성을 잃고 신학을 위한 방법론, 또는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의 역할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중세를 일컬어 사상이 암울한 시기라고 정의 내리지만, 기독교 철학을 신봉하는 토마스주의자들은 일련의 사상들이 크리스트교를 구심점으로 하여 순조롭게 자리를 구축하였던 조화와 통일의 시기로 정의 내리기도 한다.
또한 중세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분류하여 교부 철학과 스콜라 철학으로 대별된다. 크리스트교 사상에 신플라톤적인 사상을 합치시킨 것이 교부 철학으로,
A. 아우구스티누스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접목시킨 것은 스콜라 철학으로,
T. 아퀴나스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교부 철학은 그리스도 사상이 자체적으로 체계를 구축하여 철학적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기간인 2세기에서 9세기에 걸친 철학 사상을 의미한다. 이 시기는 동양 종교 · 헬레니즘 철학· 로마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교회에 위협을 준 지적이고 신비주의적 운동인 그노시스파의 활동이 두각을 나타냈다. 교회의 지도자격인 교부들에 의해 순수 크리스트교와 정통성을 위한 자극적 사상 체계를 이루고자 노력한 끝에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철학 자체를 무시하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하여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는 도덕상과 예술상의 진리를 신랄하게 표현한 경구가 탄생하였다. 그렇지만 극단적인 교회에 위협을 준 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운동 인 그노시스 사상과 반철학적인 종교상의 이치나 원리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면서 헬레니즘 철학과 크리스트교 사상을 합치시키기 위한 오리게네스의 종교 철학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철학적인 이상과 종교적인 신비를 정복시키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종교상의 권위를 넓히는 것과 더불어 교부 철학은 철학적 신학을 위한 준비 단계이며, 윤리와 인간의 자유 의지는 신앙과 신의 섭리 를 위한 전제라고 하는 크리스트교 본래의 사상 체계를 구축하였다.
교부 철학을 완성시킨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를 크리스트교 신학으로 끌어들여 깊이 있는 철학적 사색을 보여 주었다.
스콜라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철학적 발전이 중지된 기간이 계속되다가 보편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인지, 또는 인간의 사고 속에 존재할 뿐인지를 둘러싸고 실념론과 유명론 사이에 벌어진 보편 논쟁의 시기가 이르렀다. 이 무렵 이탈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로 켄터베리 대주교인 안셀무스는 이성에 의한 논증 자세를 굳게 지키면서 신의 실체를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하였다. 이 시기 이성 과 신앙, 철학과 신학의 합치라는 스콜라 철학의 개념이 머리를 들고 있었다.
스콜라 철학은 13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는데, 크리스트교의 교리에 대한 학문적 해명이 필요하였던 시대상, 교회와 수도원에 속한 부속 학교들에 의한 학문 활동, 프란치스코 교단과 도미니크 교단에 의한 경쟁적 탐구, 아랍 학자에 의하여 새롭게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영향 등에 상승 작용이 일어나면서 그 토대가 이루어졌다.
A. 마그누스는 스콜라적 방법론 과 학문적인 체계를 구축하였는데, 문제 제기에 의한 이론 과 학설의 발췌와 소개에 의한 문제의 해결이나 보류라고 하는 그의 방법론은 아퀴나스에게 이어져서 스콜라 철학 은 하나의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아퀴나스 철학은 모든 것에 대한 조화를 나타내고 있으며, 모든 것이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종합적인 일반 이론을 도출해냈다.
프란치스코단에 속해 있는 알렉산더와 보나벤투라, 또한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스콜라 철학과 상반되는 지점에는 M. 스코투스와 R. 베이컨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스코투스는 선이 참보다 앞에 있으며, 신학은 이론보다는 실천이 요구된다고 주창하였다. 베이컨은 모든 권위· 선입견·맹신에 의해 진리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식을 위해서는 논증 과 더불어 경험과 관찰이 중요하다라는 근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가 끝나고 근대 정신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크리스트교 사상 자체가 인간의 이성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기에 이르르면서 중세 철학은 인간과 사회를 척도 로 하는 근대 사상으로 교체시켰다. 그렇지만 중세 철학 에는 르네상스와 같은 근대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중세 철학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으나 19세기 후반부터 급격한 속도로 다시 인식되기에 이르러 오늘날에는 C. 보임커, M. 울프, M. 그라프만, E.H. 질송 등의 연구로 그 평가가 새로워지고 있다.
중세 철학은 진리에 있어서 서로 모순되는 일이 없도록 조화를 이루려고 함에 따라 고대 철학과 근대 철학에서는 엿볼 수 없는 독자적인 정신 세계를 쌓아나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