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9 ~ 1612]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입지(立之). 호는 간이(簡易)· 동고(東皐). 진사 자양(自陽)의 아들이다. 이이의 문인.
1555년(명종 10) 진사가 되고, 1561년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1577년(선조 10) 주청사의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81년 재령 군수를 지냈다. 1584년 이문정시에 장원, 1592년 공주 목사가 되었으며 다음 해 전주 부윤 등을 지냈다. 주청부사·판결사· 형조 참판에 이르렀으나 사직 후, 평양에 은거하였다.
당대 문장가로 인정받아 중국과의 문서 등을 많이 작성하였고, 중국의 왕세정과도 문장을 논하였으며, 그 곳의 학자들로부터 명문장가라는 찬사를 받기로 하였다.
초·목·화·석을 소재로 한 40여 종의 시가 있으며, 글씨는 송설체에 일가를 이루었고 문장은 의고 문체에 뛰어나
차천로의 시,
한호의 글씨와 함께
송도 삼절이라 하였다.
《간이집》 《주역본의구결부설》 《한사열전초》 《십가근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