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78] 고려 시대의 문신. 본관은 해주이다. 일명 최경이다. 최원의 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를 지내고, 아첨으로서 임금의 사랑을 받던 신하
최안도이며, 형은 공민왕에게 반역한
최유(?~1364)이다.
최원은 아버지의 덕으로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349년(충정왕 1) 좌대언·개성윤 등을 거쳐 판도판서를 지냈다. 1352년(공민왕 1)에는 왜구가 쳐들어와 교동 갑산창을 불태웠다. 이 때 최원이 왜구를 무찌르고 배 2척을 빼앗아 왔다. 그는 이 공으로 진력협모 공신이 되었으며, 밀직부사의 자리에 올랐다. 그 해, 국권을 한손에 쥐고 충신들을 제거하는 한편, 왕을 위협하여 우정승의 자리에 오른
조일신(?~1352)이 난을 일으키자, 최원은
안우·
최영 등과 함께 이 난을 평정함으로써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던 재상 김보가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 최원을 고발하여 잠시 순군옥에 갇힌 후 광양감무로 밀려났다. 한편, 중국에서는 원나라 말기에 장사성(1321~1367)이라는 사람이 군사를 일으켰다. 이에 1354년 원나라에서는 장사성을 쳐 없애기 위하여 고려에 구원병을 청해 왔다. 이 때 최원은 용성군에 봉해진 뒤 출정하여 원나라의 고우성· 사주 등지에서 싸우고 돌아왔다. 우왕이 즉위하자, 최원은 판종부시사로서 명나라 사신으로 가 공민왕의 죽음을 알리고, 공민왕의 시호와 그 뒤를 이어 우왕을 제후로 봉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가 3년간 그 곳에 억류되었다. 1378년(우왕 4) 6월에 풀려나 고려로 돌아왔는데, 같은 해 9월 사헌부에서 최원이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소홀히 하였다고 탄핵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옥에 가두고 국문하던 중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