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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최해산(崔海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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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산 (崔海山)
[1380 ~ 1443]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영천이다. 고려 말기의 장군으로서 화약을 만들어 왜구를 격파한 최무선(?~1395)의 아들이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최해산 (崔海山) 1433년 1419년 1380년 1377년 최무선 최윤덕 이종무 화통 도감 총통등록 대마도 정벌
▣ 참조 카달로그
◈ 참조 키워드
1446년 (2) 백과 15세기 (2) 백과 화통 도감 (2) 백과
▣ 백과사전
[1380 ~ 1443]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영천이다. 고려 말기의 장군으로서 화약을 만들어 왜구를 격파한 최무선(?~1395)의 아들이다.
 
최해산은 1395년(태조 4) 아버지 최무선이 쓴 책 《화약수련법》 《화포법》을 보고 그 비법을 전수받았다.
 
1401년(태종 1)에는 군기시에 등용되어 주부라는 벼슬에 올랐으며, 1408년 경기우도 병선군기점고별감을 지냈다. 그리고 1409년 최해산은 군기감승이 되었으며, 그 해 화차를 만들어 왕이 참석한 가운데 해온정에서 발사 시험을 하였다. 화차는 수레 속에 40개의 구멍을 내어 그 구멍에 총을 걸고, 심지를 이어서 차례로 내쏘게 되어 있다.
 
1413년(태종 13) 최해산은, 먼저 화약을 재어 넣고 쇠, 또는 돌로 만든 둥근 탄환을 넣어 내쏘는 완구를 대완구 ·중완구·소완구 3종으로 만들어 시험 발사하였다. 이것은 그 때까지 화포를 방어용으로 사용하던 것을 공격용으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1415년 최해산은 좌군절제사를 지내던 중 파저강에 있는 여진족 정벌에 대한 군사 기밀을 누설하였다는 죄로 관직을 파면당하였다. 그 후 세종 초에 복직되어 대호군을 지냈으며, 그 후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424년(세종 6) 군기판사가 되어 왕이 참석한 가운데 광연루에서 화포 발사 연습을 주관하였다. 1425년 군기감사가 되었으며, 1430년에는 전국적으로 화포방사군을 배치함에 따라 그 훈련을 맡아서 관리하였다. 1431년 좌군동지 총제를 지내고, 1432년 종2품 벼슬인 공조 우참판이 되었다.
 
1433년 좌군절제사가 되어 도원수 최윤덕과 함께 파저강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하여 참전하였을 때에도 군사 기밀을 누설하였다는 죄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세종은 그가 20여 년 동안 화포를 개발하는 데에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하여 관직만 빼앗도록 하였다.
 
그 뒤 1434년 제주 안무사를 지내고, 1436년 종2품 벼슬인 중추원 동지사에 이르렀다.
 
최해산은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화약에 대한 비법을 바탕으로, 화차· 완구를 비롯하여 총포에 실탄을 쓰지 않고 화약만을 재어서 내쏘아 불만 일어나게 하는 발화 등 화약을 이용한 새로운 병기를 만들었다.
 
그가 죽은 뒤인 1445년(세종 27) 그가 만든 화포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화포가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화포 및 화약의 제조 방법과 사용법에 대하여 1448년 9월에 간행된 《총통등록》에서 크게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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