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중기 이후에 두었던 경찰 관서. 줄여서 포청이라고도 하였다.
그 창설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연산군 때에 서울 안팎으로 도둑이 많아 그 폐단이 커서 ‘포도(捕盜 : 도둑을 잡음)’를 명한 기록이 있고, 중종 초에 포도 순검사를 충청도· 황해도 등에 파견하였으며, 말년에는 포도 절목을 마련한 것 등으로 보아 그것이 그 시초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포청의 명칭은 《속대전》에 처음 보이는데, 이에 따르면 포도청은 좌, 우의 양 청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선 후기에 좌포도청은 한성부의 중부 정선방(서울 종로 3가 일대)에 두어 한성부의 동·남·중부와 경기 좌도 일원을 관할하였고, 우포도청은 서부 서린방(서울 중구 서린동 일대)에 두고 한성부의 서·북부와 경기 우도를 관할하였다. 고종 31년(1894년)의 갑오개혁 때 좌·우 포도청을 경무청으로 개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