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 ~ 1605] 조선 중기의 명필. 호는 석봉(石峯)이다.
1567년에 진사시에 급제한 후 가평 군수, 흡곡 현령 등의 벼슬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글씨의 천재로서
왕희지,
안진경 의 필법을 익혀 해서, 행서, 초서 등 각 체에 두루 뛰어났다.
외국 사신을 수행하거나 맞을 때 연회석에 나아가 훌륭하게 글씨를 써 보여 이름을 떨쳤으며, 우리 나라 서예계에서
김정희와 쌍벽을 이룬다.
그의 필적으로 《석봉서법》 《석봉천자문》 등이 모간(模刊)되었고, 친필은 별로 남은 것이 없으나 그가 쓴 비문(碑文)은 많이 남아 있다.
글씨로는 『허엽신도비(許曄神道碑)』(용인) 『서경덕신도비(徐敬德神道碑)』(개성) 『기자묘비(箕子廟碑)』(평양) 『김광계비(金光啓碑)』(양주) 『행주승전비(幸州勝戰碑)』(고양) 『선죽교비(善竹橋碑)』 『좌상유홍묘표(左相兪弘墓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