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高麗圖經)은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 1091년 ~ 1153년)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보고서다. 원명은 송 휘종의 연호인 선화(宣和, 1119년~1125년)를 넣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라고 하며, 이를 줄여서 《고려도경》이라고 한다.
1123년(선화 5년) 서긍은 휘종의 명을 받고 고려 예종의 조의를 위해, 정사 노윤적(允迪), 묵경(墨卿)과 함께 사신으로 파견된다.
그들은 예성강 하구 벽란도를 통해 배를 타고, 입국하여 고려의 도성인 개경에 있는 사신의 숙소인 순천관에서 몇 개월을 머물다가 중국에 돌아온 후 다음 해 1124년 선화 6년 8월 6일 이 책을 완성하고, 황제에게 보고서 형식으로 바친 책이다.
원래 글과 그림이 같이 있어 도경(圖經)이라 한 것이나, 1126년 정강의 변을 거치며 완전판은 소실되었고, 1167년 송 효종 건도 3년 서긍의 조카인 서천(徐蕆)이 이 책을 다시 간행했지만, 그림은 없어지고 글만 전한다.
전 40권으로, 고려 시대 당대의 자료라는 점에서, 고려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군사, 예술, 기술, 복식, 풍속 등등의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내용
1124년(선화 6년) 8월 6일 지어진 서문에는 고려 예종의 조위를 위한 사신단에 도적(圖籍, 지도, 그림 등)의 수집 제작을 위해 고려로 간다는 목적을 기술하고 있다. 중국과 다른 풍속 등 300여 조를 수집하여 책 40권으로 만들었고, 그림과 주석을 달아 《선화봉사고려도경》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또한 참고 서적인 《계림지》(鷄林志) 등을 참고 하여 건국부터 풍속 등까지 내용을 소개하고, 작업 과정 등을 설명하였다.
제1권에는 고려의 건국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고려란 고구려를 말하며, 기자의 제후라고 밝히고 있다. 이 고려도경에서는 고려의 선조가 주나라 무왕이 봉한 기자 서여(胥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주나라, 진나라를 지나 한나라 고조 12년 연나라 사람 위만이 무리를 모아 오랑캐를 복속하고, 조선 땅을 차지하였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부여에서 주몽이 등장하여 고구려라고 부르며, 국명을 고려라고 했다고 주장한다. 건국 부분에는 고씨의 고려(고구려)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설명하고 있다.
제2권 세차(世次)에는 또한 왕씨가 등장하여 당시까지의 고려 왕의 계보를 설명하고 있다.
제3권 성읍, 봉경(封境)에서도 모든 역사관의 중심을 기자를 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종묘와 사직 등의 배치가 기자가 봉작을 받은 옛 땅이어서, 중화의 풍속과 습관이 전해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8권 인물 편에는 북송을 중심으로 동남쪽 이적(夷狄)들 중에는 고려의 인재가 가장 왕성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척준경 등 만났던 벼슬아치들의 이름과 이자겸, 윤언식, 김부식, 김인규, 이지미 등은 따로 소개를 하고 있다.
제16권에는 국자감(國子監)을 비롯한 약국(藥局), 창름(倉廩), 영어(囹圄), 부고(府庫) 등의 인상적인 용도의 건물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고려는 다른 모든 물품은 물물교환을 통하여 교역을 했지만, 약을 사는 것은 반드시 전보(錢寶)를 통해서 하였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제17권 사우(祠宇)에서는 팔관재 행사를 설명하며, 이 의식이 극히 성대하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는 정국안화사(靖國安和寺), 광통보제사(廣通普濟寺), 흥국사, 국청사(國淸寺) 등의 사찰과 숭산묘(崧山廟), 동신사(東神祠), 오룡묘(五龍廟) 등의 사당을 소개하고 있다.
제23권 잡속2 한탁(澣濯)에는 고려인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 자주 씻고, 중국인들의 더러운 위생상태를 비웃으며, 남녀가 시내에서 혼욕을 하였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어(漁)에는 미꾸라지(鰌), 전복(鰒), 조개(蚌), 진주조개(珠母), 왕새우(蝦王), 문합(文蛤), 붉은게(紫蟹), 굴(蠣房), 거북이다리(龜脚), 해조(海藻), 다시마(昆布)는 귀천없이 잘 먹는 해산물에 대해 소개하였다.
제32권에는 기명 3(器皿 三)에서는 다기(茶俎), 술독(瓦尊), 등잔(藤尊), 도로(陶爐), 밥그릇, 옹기 등의 자기와 그릇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