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 ~ 1346] 고려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이고, 어릴적 이름은 권영(權永), 자는 제만(齊滿)이며, 호는 국재(菊齋)이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그의 아버지는 찬성사를 지낸 권단이며 어머니는 좌간의대부 노연의 딸이다. 그는 15세에 진사가 되었고, 18세에 급제하여, 이듬해 첨사부녹사가되었다. 이후 우정언과 첨의사인을 지냈다.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자 찬성사에 올랐고 이어 정승이 되었다. 충숙왕 이후 어려웠던 대원관계를 국로의 자격으로 정돈하여 어려움을 해결하였다.
민지를 도와 세대편년절요 편찬에 참여하였다.사서집주의 간행을 건의하여 간행되도록 하였으며 은대집 20권을 주석했으며, 아들 권준, 사위 이제현과 함께 효행록을 편찬하였다.
그는 고려의 다섯 왕(충렬‧충선‧충숙‧충혜‧충목)을 섬겼으며 정1품 삼중대광(三重大匡)까지 벼슬을 했고, 85세의 명을 누렸다.
아들은 권준‧권종정(權宗頂)‧권고(權皐)‧권후(權煦)‧권겸(權謙)이고, 사위는 안유충(安惟忠)‧
이제현‧ 순정대군 왕도(王璹)‧희안대군 왕순(王珣)이다. 그는 양촌
권근의 증조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