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7 현인(hoi hepta sophoi 호이 헤프타 소포이)은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경 까지 활동했던
고대 그리스의 인물들이다. 이들 중
탈레스는 '지혜의 탐구자'로서
서양철학의 시조라 일컬어졌으며 솔론은 참정권과 병역의무를 규정하여 입헌적 민주정치제도의 기초를 세운 정치가로 유명하다.
7현인의 '7'이라는 숫자는 그것을 행운으로 여기는 서양의 '7'수 숭배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대체로 7현인을 선정한 기준은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 후세에 사표가 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7현인에 거명되는 사람이 20명 가까이에 이르렀으나 위에 열거한 7인이 대표적이며 이중 탈레스, 솔론, 피타코스, 비아스 4명은 늘 고정되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7현인의 명부는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에 나오는데, 그 후로 4세기경까지 7현인으로 꼽힌 사람은 20여 명에 이른다. 7현인의 명부가 생긴 것은 BC 6세기 후반경으로 여겨지는데, BC 1세기 말의 역사가 디오도로스와 2세기의 여행가 파우사니아스 등에 의하면, 탈레스 ·비아스 ·피타코스 ·클레오브로스 ·솔론 ·킬론 ·페리안드로스(플라톤에서는 뮤손)라는 거의 동시대(BC 7~6세기)의 일곱 사람이다.
플라톤이 《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중에서 든 것은 다음과 같다.
밀레투스의 철학자
탈레스 - '지혜의 탐구자'로서 서양철학의 시조
그러나, 뮤손을 들고 있는 것은 플라톤만으로 대체로는 그 대신에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가 들어지고 있다. 이 일곱 명눈은 고대의 서적에 대해 가지각색이며, 반드시 통일되어 있지 않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드는 곳은 25명이나 된다.
일곱 현인의 멤버에 대해서는 고대의 서적에 대해 가지각색이며, 반드시 통일되어 있지 않다. 또, 「일곱 현인」이라고 있지만, 플루타르코스는 「데르포이의 것 Ε에 임해서」에서 본래는 다섯 명이었지만, 두 명의 참주가 덕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의해서 그 이름을 강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최초로 누가 왜 영리하다고 불렀는지는 불명하다.
일곱 현인의 유명한 일화로서는 그들의 사이에 생긴 지혜 비교가 있다.
바다 속에 가라앉고 있고, 우연히 발견된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의 정을 둘러싸고 코스와 미레토스와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많은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에, 그들은 델포이로 받은 「과거, 현재, 미래를 지로 적시는 사람」에게 정이 가까스로 도착할 때까지는 양국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신탁에 근거해 현자로서 유명했던 탈레스에 정을 주었지만, 그는 자신에게는 적격이지 않다며 다른 현자에게 양보했다. 결국 정은 일곱 현인의 사이에 대야 돌려로 되어 탈레스의 아래에 돌아왔다. 거기서 그는 아폴론에 봉납해, 신탁을 전하는 퓨티아(무녀)가 이 정에 앉고 신탁을 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