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영조 25)∼1802(순조 2)]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이중(而仲). 서얼(庶孼) 출신이지만 학문이 뛰어나 유학(幼學)으로서 1779년(정조 3)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생원
유득공(柳得恭) 등과 함께 정조의 특명으로 규장각검서관(奎章閣檢書官)에 임명되었고, 승문원이문학관(承文院吏文學官)을 겸임하였다. 당시 이 네 사람은 4검서로 유명하였다.
1788년에 검서관 취재(取才)가 있었는데, 이때 진사 성해응(成海應)과 지난해 합격자 이공무(李功懋)가 검서관에 제수되고, 서이수는 이집기(李集箕)와 함께 재능과 공적이 인정되어 계속하여 검서관에 유임되었다. 뒤에 용인·포천·토산(兎山) 등의 군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