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 ~ 1578] 조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명장
권율의 아버지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503년 강화부사 권적(權勣)과 순흥 안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검열, 사관 등을 거쳐 1537년,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벽동에 유배되었다. 이후 김안로가 사사되자 복직되어 저작, 박사, 수찬, 설서 등을 거쳐 병조, 이조, 형조의 정랑, 좌랑과 직강, 교리, 헌납, 지평, 장령, 집의, 정언, 감찰, 헌납 등의 청요직도 지냈으며 이어 승문원판교와 동부승지를 지내고 도승지,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전라도 관찰사 겸 도순찰사로 왜구를 격퇴한 뒤 병조판서, 공조판서, 이조판서, 우찬성 등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의 3정승을 지냈다.
• 영의정을 지낸 권철은
이항복의 이웃에 살고 있었다. 이항복의 인물됨됨이를 알아본 권철은 아들
권율에게 이항복을 사위를 삼도록 권하여 이항복은 19세에 권율의 딸과 혼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