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 ~ 1882] 조선 시대의 왕족으로
흥선대원군의 형이다. 이름은 이최응(李最應), 자는 양백(良伯), 호는 산향(山響), 군호는 흥인군(興寅君)이다. 남연군 이구와 여흥군부인 여흥 민씨의 셋재 아들이자 흥선대원군의 바로 윗 형이었다. 자는 양백(良伯)이고 호는 산향(山響), 시호는 효헌(孝憲) 또는 충익(忠翼), 문충(文忠)이었다. 본관은 전주이다.
흥선대원군의 친형이었으나 그의 무시를 당했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 흥선대원군 실각 후 좌의정, 세자부, 영의정 등을 지냈으며 통리기무아문 총리대신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했다가 유림과 갈등하였다.
그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반대하여 1880년 이후 미국, 일본과의 개항 정책에 적극 동조하였다. 1882년(고종 19) 6월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의 사주를 받은 난병에게
민겸호(閔謙鎬)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한편 동생인 흥선대원군과의 감정대립으로 민씨 정권의 측근으로 지냈는데,
민승호와
흥선대원군은 그를 이용해서 상대방의 정세를 염탐하는데 이용하려 하였다.
별칭은 유유정승(唯唯政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