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 ~ 1919] 조선 말기의 정치인으로
정미칠적의 한 사람이며,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본관은 풍천이다.
현재의 서울 종로구 통의동 출신이다. 1885년 별시(別試) 병과(丙科)로 합격하여 승정원에서 관직을 시작했다. 이후 성균관 대사성과 시종원 좌시종 등을 거쳤다.
1907년
이완용의 친일 내각에서 내부대신을 맡아 대한제국 고종 강제 퇴위와
한일신협약 체결 과정에서 적극 협력했다. 1908년에는 탁지부의 수장인 탁지부대신에 임명되어, 일본 소유의 군과 철도 용지에 대해서 세금을 면제하고 의병에게 살해당한 사람의 유족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노골적인 친일 정책을 폈다.
1910년 한일 합병 조약 체결에 협조한 공으로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고,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었다. 1911년에는 5만원의 은사공채를 받았고, 이듬해 종4위에 서위되었다. 그의 작위는 아들
임낙호가 습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