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2(숙종 8)∼1740(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 자는 취사(取斯)이다. 공조정랑 극형(克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징(澄)이고, 아버지는 양관대제학 유(楺)이며, 어머니는 송박(宋搏)의 딸이다.
1707년(숙종 33) 성균관 유생으로서 김장생(金長生)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것을 상소하였다.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13년 설서(說書)가 되고 이듬해 정언(正言)이 된 뒤, 문학·지평(持平)·부수찬(副修撰)·수찬·부교리(副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1723년(경종 3)
신임사화로 울산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영조의 즉위로 풀려나 1725년(영조 1)에 승지에 이어 평안도관찰사·대사헌·우윤·대사간·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할아버지
징(澄)이 전에 관찰사로 재직 중 탄핵받았던 곳임을 들어 사직하였다. 그 뒤 대사성·동지의금부사를 거쳐 1729년에 함경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서 판윤을 거쳐 다시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1731년에 병조판서, 이듬해에 예조판서, 1733년에 이조판서가 된 뒤 동지성균관사·지경연사(知經筵事)·수어사(守禦使)·좌빈객(左賓客) 등을 거쳐 1737년에 호조판서가 되었으나 당쟁으로 파직당하고, 무주에 유배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