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 ~ 1881] 조선의 문신, 척신, 정치가, 시인, 저술가이며
신정황후 조씨의 친정 조카이고
조영하(趙寧夏)에게는 동갑의 6촌 형이 된다.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字)는 순소(舜韶)이며 호(號)는 소하(小荷)이고 시호(諡號)는 문헌(文獻)이며 한성부 출생이다.
철종 때인 1861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로 급제한 후 대교(待敎)가 되었다. 장인 이호준(李鎬俊)을 통해 불우한 처지에 있던 흥선군(興宣君)을 만나 친분을 쌓았으며, 흥선군과 고모 조대비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도 했다.
고종 연간에 대사성, 이조참의를 지냈으나 흥선대원군 집권 말기 그의 정적이 되어 실각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다. 1874년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되었다.
그 후 경연지사(經筵知事),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1881년 의정부 좌참찬에 부임되었으나 그 해 병으로 죽었다.
저서에 《금강산기(金剛山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