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9 ~ 1570] 호는 구암(久菴). 아버지는 김광좌(金匡佐)이다. 어려서부터 형
김취성(金就成)과 함께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1537년(중종 3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지방 수령으로 전전하다가 사성(司成)이 되었다. 명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568년(선조 1)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뒤 대사간에 이르렀다. 문집으로서는 《구암집》이 전한다.
시호가 정간(貞簡)에서 문간(文簡)으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