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단체.
구한말인 1904년 2월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단체. 당초 민족주의 개화운동 단체로 출범했으나, 나중에 친일단체로 변질됐다. 동학(東學) 봉기가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한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지령에 따라 조직책인
이용구(李容九)와
홍병기(洪秉箕) 등이 주도해 만들었다. 전국 360개 군(郡)에 지방조직을 설치해 기반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질타하고 교육의 부흥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용구의 친일행각과 함께 친일단체로 전락했다. 이용구는 러일전쟁(1904년 2월~1905년 9월)이 발발하자 일본군에 협력했으며,
경술국치 조약 체결 찬성 여론을 주도하는 등 친일파의 거두 노릇을 했다.
진보회는 1904년 12월 2일 대한제국 시절 대표적인 친일 단체인
일진회(一進會)에 통합됐다. 일진회는 매국노
송병준(宋秉畯) 등이 1904년 8월 조직한 친일단체. 송병준은 1907년 이완용(李完用) 내각이 들어서자 내부대신 등을 지내며 경술국치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일진회는 한성부(서울)를 무대로 활동했을 뿐 전국적인 지방조직이 없는 데다 대중적 기반도 허약했다. 일제의 보호 아래 명맥만 유지하던 송병준은 진보회가 전국적인 기반을 갖고 있음에 착안, 이용구를 매수해 진보회를 통합했다. 이에
손병희는
일진회와 관계가 없음을 밝히고
이용구 등 친일파 26명을 동학에서 출교(黜敎)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