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스승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정원을 지었는데,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瀟灑)’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로 되어 있다. 4,060㎡의 면적에 기능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애양단구역, 오곡문구역, 제월당구역, 광풍각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 내에는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들로 된 숲이 있다.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애양단’,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소쇄원 안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을 목판에 새긴 그림이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정원으로 송강
정철 등 당대의 문사들이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