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이다. 선문대할망, 설명두할망, 설명뒤할망, 세명뒤할망, 세명주할망 설화라고도 하며, 《탐라지(耽羅誌)》<담수계편>에는 설만두고(雪慢頭姑)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또한 18세기 장한철(張漢喆)이 지은 <표해록(漂海錄)>에 사람들이 한라산을 보고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선마고(詵麻姑)이다. 마고에 빌었다는 의미로 선문대할망이 한자 선마고로 표기된 것이다.
한국구비문학(韓國口碑文學)에서는 한국에 내려오는 설화 등을 모아 신이담으로 분류하는데 신이담에는 기원담(起源譚) · 변신담(變身譚) · 응보담(應報譚) · 초인담(超人譚) 등의 설화가 전해온다. 설문대할망의 전설은 신이담(神異譚) 중 초인담(超人譚)으로 분류하는 설화이다. 제주에서는 묻혀 죽은 노파라는 뜻에서 `매고(埋姑)할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화와 함께 마고와 비교되는 할망으로 전해진다.
제주민속촌 자료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설문대는 어느 날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섬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치마폭에 가득 흙을 퍼서 나르기 시작했다.
하늘을 닿을 듯 높아진 흙무더기는 은하수를 만질 수 있을 만큼 높다 하여 한라산이라고 이름이 지어졌고, 치마폭 사이로 떨어진 흙은 군데군데 오름과 섬들이 되었다. 산을 만들다 너무 높아 봉우리를 꺽어 던졌더니 안덕면 사계리에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
설문대할망은 엄청난 거구여서 한라산을 베게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시 앞 관탈섬에 걸쳐졌다. 빨래를 할 때면 손을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관탈섬에 빨랫감을 놓아 발로 문지르며 빨았다. 또,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오른쪽 다리는 서귀포 앞바다 지귀섬에 디디고 왼쪽다리는 관탈섬에 디뎌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하기도 하였다.
가난한 설문대할망은 속옷이 없어 제주백성들에게 “속옷을 한벌 만들어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마”라고 약속했다.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하여 명주를 모았으나 아흔아홉동(1동은 50필)밖에 모으지 못하여 속옷을 만들어주는데 실패했다. 결국 제주는 섬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설문대가 다리를 놓던 흔적이 조천읍 조천리와 신촌리 바닷가에 바위섬들로 남았다.
원래 우도는 원래 제주도와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이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과 성산리 일출봉에 양다리를 걸치고 앉아 오줌을 싸자 땅이 패이며 그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 섬이 되었다. 얼마나 오줌줄기가 세었는지 바다가 깊게 패여 성산과 우도 사이에는 물살이 유난히 빠르다.
설문대할망 부부에는 오백 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모두 한라산에서 사냥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큰 짐승도 없는 산이라 죽으로 연명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설문대가 오백 명 분의 죽을 끓이려고 솥에 올라 가래로 죽을 젓다가 뜨거운 죽 속에 빠져 죽었다. 저녁에 돌아온 자식들은 잘 익은 죽을 먹으며 “오늘은 죽이 정말 맛있다”며 아우성이었다. 막내아들만은 어머니가 안보이는 게 이상해 죽을 먹지 않았다. 죽을 다 먹고 나니 밑바닥에서 뼈가 나오자 그제서야 어머니가 솥에 빠져 죽은 줄 알았다.
“어머니의 살을 먹은 형제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며 막내아들은 서귀포 삼매봉 앞바다에 내려가 슬피 울다가 외돌괴가 되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늘어서서 한없이 울다가 지쳐 몸이 굳어 바위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오백장군, 오백나한이라 하며, 이곳을 영실이라 하고 그 바위들을 영실기암이라 불렀다.한라산 영실기암에는 설문대할망의 슬픈 사연이 얽혀 전해지고 있다.말로는 오백장군이라 하지만 막내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사실은 바위가 499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은 죽어서도 주민들을 수호하였다. 표선면 표선리 사람들은 마을 앞에 깊은 바다가 있어 폭풍이 칠 때마다 고통을 당하였다. 주민들이 설문대할망에게 기원을 했는데 하루 저녁에 그 깊은 물이 메워져 백사장으로 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