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s, 정식으로는 과학과 세계의 분쟁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s on Science and World Affairs)는 모든 핵무기및 모든 전쟁의 근절을 호소하는 과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회의이다.
버트런드 러셀과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의해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으로 이에 영향을 받은 11명의 저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창설되었다.
1957년 7월 7일,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퍼그워시에 있는 별장에서, 유카와 히데키, 토모나가 신이치로, 오가와 이와오, 막스 보른,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등 10여 개국 22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제 1차 퍼그워시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모든 핵무기를 절대악이라 규정하였다.
하지만 제 2차 회의 이후, 핵무기에 대한 평가가 변화해, 핵무기 폐기를 주장하는 러셀측과, 핵무기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레오 실라드측 과의 대립이 극명해졌다.(실라드는 핵억지 이론측에 섰다). 핵억지 이론이 회의에 정착하기 시작해 1964년 제 12차 회의에서, 최소억지의 원칙은 전반적으로 군비감축이 가능한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1958년 9월 2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 3차 퍼그워시 회의 에서, 빈 선언이 채택되었다.
한편 후일 미국에게 있어 소련을 반전운동의 거점이 되도록 유도한 것은 미국 평화 위원회(US Peace Council)인데, 미국 첩보 위원회에서 이 조직과 관계 깊은 조직으로 퍼그워시 회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1]
1995년 퍼그워시 회의 창설자 조지프 로트블랫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