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63] 원나라 때의 고승(高僧). 인도 마갈타국(摩羯陀國) 사람으로, 8살 때 승려가 되었다. 원나라로 건너가 불법을 전했는데, 이때 고려(高麗)의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인가(印可)를 주었다.
인물 :
[? ~ 1363] 원나라 때의 고승(高僧). 인도 마갈타국(摩羯陀國) 사람으로, 8살 때 승려가 되었다. 이름은 제납박타(提納薄陀, 禪賢)다.
원나라로 건너가 불법을 전했는데, 이때 고려(高麗)의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인가(印可)를 주었다. 충숙왕 15년(1328) 고려에 들어와서 금강산 법기도량(法起道場)에 예배하고 연복정(延福亭)에서 계를 설했다. 다시 원나라로가 연경(燕京)에서 법원사(法源寺)를 짓고 머물렀는데 이때 고려의 혜근(慧勤)에게 선종을 전수하기도 했다.
【문화】온정리(溫井里)로 내려와 노독(路毒)을 풀고 오늘은 다시 방향을 돌려 유점사(楡岾寺)로 가기로 한다. 여기서 유점사(楡岾寺)로 가려면 고성(高城)이나 온정리(溫井里)에서 보현동(普賢洞)을 지나 백천리(百川里)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걸어 개잔령(開殘嶺)을 넘어 유점사(楡岾寺)를 찾데 되는 것이다. 해금강을 먼저 보고 유점사(楡岾寺)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해금강을 먼저보고 유점사(楡岾寺)로 가려면 이 노도(路途)를 밟아야 하겠으나, 만일 내금강(內金剛)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마하련(摩訶衍)을 넘어 내무재령(內霧在嶺)을 넘는 것이다.
【문화】고려태조(高麗太祖) 왕건(王建)이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2년, 병진년(丙辰年)에 궁예 휘하의 제장(諸將)의 추대를 받아 왕위(王位)에 올라 국호(國號)를 고려(高麗)라고 하고 도읍(都邑)을 지금의 개성(開城)인 송악산(松嶽山) 남으로 옮기니, 개성(開城)은 고려(高麗) 역대(歷代)의 왕도(王都)로 정해지게 되었다.
【문화】오늘은 해주(海州)의 북숭산(北嵩山)에 있는 신광사(神光寺)를 찾기로 한다. 이 신광사(神光寺)는 해주군(海州郡) 석동면(席洞面)에 있어, 패엽사(貝葉寺)의 말사(末寺)로 되어 있다. 개성(開城)을 거쳐서 가는 길이니, 개풍군(開豊郡)에 있었던 흥왕사(興王寺) 옛터를 찾아보고 싶어진다.
【문화】오늘은 해주(海州)의 북숭산(北嵩山)에 있는 신광사(神光寺)를 찾기로 한다. 이 신광사(神光寺)는 해주군(海州郡) 석동면(席洞面)에 있어, 패엽사(貝葉寺)의 말사(末寺)로 되어 있다. 개성(開城)을 거쳐서 가는 길이니, 개풍군(開豊郡)에 있었던 흥왕사(興王寺) 옛터를 찾아보고 싶어진다.
【문화】고려태조(高麗太祖) 왕건(王建)이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2년, 병진년(丙辰年)에 궁예 휘하의 제장(諸將)의 추대를 받아 왕위(王位)에 올라 국호(國號)를 고려(高麗)라고 하고 도읍(都邑)을 지금의 개성(開城)인 송악산(松嶽山) 남으로 옮기니, 개성(開城)은 고려(高麗) 역대(歷代)의 왕도(王都)로 정해지게 되었다.
【문화】온정리(溫井里)로 내려와 노독(路毒)을 풀고 오늘은 다시 방향을 돌려 유점사(楡岾寺)로 가기로 한다. 여기서 유점사(楡岾寺)로 가려면 고성(高城)이나 온정리(溫井里)에서 보현동(普賢洞)을 지나 백천리(百川里)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걸어 개잔령(開殘嶺)을 넘어 유점사(楡岾寺)를 찾데 되는 것이다. 해금강을 먼저 보고 유점사(楡岾寺)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해금강을 먼저보고 유점사(楡岾寺)로 가려면 이 노도(路途)를 밟아야 하겠으나, 만일 내금강(內金剛)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마하련(摩訶衍)을 넘어 내무재령(內霧在嶺)을 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