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7 ~ 1484]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초명은 동(董)이었다가 뒤에 치신으로 개명하였다. 자는 맹충(孟忠)이고 시호는 호안(胡安)이다. 정승
황희의 아들이다. 조선 역사에서 과거에 급제하지 않고 정승이 된 몇 안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음서로 출사하여 공안부부승(恭安府副丞)에 등용되고, 여러 벼슬을 거쳐 태종 때인 1415년 통례문 봉례랑(奉禮郞)이 되었다. 이후 사헌부감찰, 호조좌랑 등을 지내고 1432년 선공감판사와 통례문판사 등을 지냈다. 1434년 동부승지에 올랐다. 1435년 예조참의가 되었고, 이후 중추원부사를 거쳐 외직인 한성부판윤,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이후 형조참판과 공조참판을 거쳐 1444년 호조판서로 승진했다. 1454년 단종 2년 중추원사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귀국 이후 1457년(세조 3)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1461년 판중추원사가 되었고, 이후 남의 노비를 빼앗은 혐의로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466년 중추부동지사로 복관되었다가 다시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사후 의정부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황치신 신도비 및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에 있다. 2005년 7월 29일 고양시의 향토유적 제4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