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년 중국 광동성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조작(朝爵)이고 호는 용애(龍厓)이다. 1566년 명나라 세종 때 지휘첨사가 되었다가 탄핵을 받아 물러났다.
임진왜란 때 부총병으로 발탁되었다가 병부상서 석성의 탄핵으로 물러났다가
정유재란 때 다시 발탁되었다. 총병관으로 수병대장을 맡았고 수군 5000명을 이끌고 강진군 고금도에 도착하였다. 진린의 계급은 제독보다 한단계 아래인 도독(都督)이었다.
이순신과 연합함대를 이루어 싸웠으나 전투에는 소극적이고 공적에는 욕심이 많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조선 수군에 대한 멸시와 행패가 심해 이순신과 마찰을 일으켰으나 이순신이 세운 전공을 진린에게 양보하자 두사람의 관계가 호전되어 전투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공동작전을 펼쳐 공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