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2월 27일 길림에서 상해의
신규식(申圭植),
조소앙(趙素昻),
정원택(鄭元澤)이
여준(呂準) 등 길림 지역 독립운동가들을 규합하여 결성하였다.
결성 다음날인 2월 28일 “① 상해에 길림 대표 파견, ② 마필과 무기 구입, ③ 근지 각처와 구미에 선언서 발송, ④ 서북간도와 아령에 연락, ⑤ 자금 모집을 위한 국내 밀사 파견” 등 5가지 진행 방침을 결정하였다. 선언서를 각지에 발송하여 각지 독립운동 세력과 긴밀히 연락하면서 자체 독립군의 무장력도 강화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대한 독립 의군부는 이와 같이 무장 독립 노선을 중심에 두면서도 동시에 외교 독립 노선도 병행하였다. 그 설립의 계기부터 상해의 신한 청년당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위 진행 방침에서도 ‘상해에 길림 대표 파견’을 앞세운 데서 알 수 있다. 즉 신한 청년당과 마찬가지로 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형성된 분위기를 포착하여 국제 사회에 한국 독립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일련의 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에 결성 다음날인 2월 28일에 「
대한 독립 선언서」(음력으로 무오년이라서 일명 「무오 독립 선언서」라 칭함) 발표를 합의하였다. 곧바로
조소앙이 선언서 내용을 기초하고 대한 독립 의군부 간부 회의에서 검토한 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때문에 선언서의 명의는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 지사 39명으로 되어 있으나, 대한 독립 의군부가 선언서 발표의 실질적 주체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