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행위자. 친일경찰로 '고문왕'의 별명을 들었다. 1918년 경무총감부 고등경찰과에 근무하면서 강우규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고문하였다. 1949년 체포되어 무기징역과 50만원의 재산몰수 처분을 받고 복역하다 1950년에 석방되었다.
평남 양덕 출생. 1909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日本]대학을 2년 마친 후 귀국, 충남공립보통학교·평양공립보통학교 교원을 하던 중 12년 조선총독부 경찰관 통역을 맡았다.
1918년 경무총감부 고등경찰과에 근무하면서 독립운동자를 고문, 반민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였으며, 1919년 경기 경찰부 고등계 형사, 1923년 형사과장으로 승진한 뒤 퇴직하였다. 1924년 경기 가평군수로 출발, 함남 참여관, 경남 참여관 등을 지내면서 친일한 대가로 종4위 훈4등을 받고, 1944년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친일경찰로 ‘고문왕’의 별명을 들었는데, 1919년 9월 2일 서울역에서 사이토(齋藤實)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姜宇奎)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고문하였다.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하던 중, 1950년 6월 한국전쟁 직전에 석방되었으며,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