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0 ~ 1724]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대중(大仲), 호는 수촌(水村)·우졸옹(愚拙翁). 임영로(任榮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승지 임연(任兗)이고, 아버지는 평안도관찰사
임의백(任義伯)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로 김상(金商)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1663년(현종 4)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고, 1671년 재랑(齋郎)·장악원주부·호조정랑 등을 지냈다.
기사환국으로
송시열이 유배될 적에 사직하였다가 다시 단양군수·사옹원첨정 등을 역임하였다.
1701년(숙종 2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장령·승지·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연잉군(延礽君)의 세자 책봉에 앞장섰다. 그 뒤
신임사화로 함종에 유배되었다가 금천(金川)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죽었다. 영조 즉위 후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가 풀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