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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재실(齋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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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 (齋室)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또는 사당 근처에 세운 건물.
▣ 지식지도
◈ 지식지도
재실 (齋室) 유교 사서 삼경 성리학 유가 제자 백가 중국 철학 유교 경전 372년 285년 공자 동중서 순자 안향 안회 왕양명 왕인 이이 이황 자사 정이 정호 주돈이 주희 최충 최치원 장재 태학
▣ 백과사전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또는 사당 근처에 세운 건물.
 
일반적으로 재실 근처에는 선산·종산·위토(位土)가 있고, 재실에는 묘지기[墓直] 또는 산지기[山直]가 살고 있다.
 
재실은 문중 또는 지파의 공유재산이지만 재실의 유지·보존·수축의 총책임자는 종손이나 직계장손이다. 종손이나 직계장손과 묘지기나 산지기 사이에는 유사(有司)가 2∼3명 있는데, 이들은 문회나 종회에서 선출되어 종손이 임명한 자들이다.
 
유사는 시향제(時享祭) 및 묘사(墓祀) 준비, 문중 내외의 연락업무, 외부 참례객의 접대, 묘소·위토·종산·선산·재실 등의 관리 그리고 산지기 또는 묘지기의 질책과 그들의 요구사항을 종회나 종손에게 전달하는 등 중간에서 실무를 담당한다.
 
묘지기나 산지기는 위토나 종산을 이용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묘소관리, 제수(祭需) 마련, 시향제 및 묘사 준비, 식사 접대 등을 담당한다. 묘지기나 산지기는 경제적으로 종속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분상으로도 상민이나 천민들이었기 때문에 종손이나 유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였다.
 
한편 재실의 기능으로는 첫째,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장소로서의 기능이다. 둘째, 선산·종산·위토 등 문중공유재산문제, 재실의 유지나 수축문제, 유사나 산지기의 문제 그리고 그해 제례과정 전체평가 등을 논의하는 종회 장소로서의 기능이다.
 
이 종회는 종손·유사 그리고 산지기나 묘지기 등이 모여서 간략하게 행하여지기도 한다. 그 밖에 참례자의 소지품 보관, 식사 접대 준비, 원거리 참례자의 숙소 등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복과 문중회의를 재실에서 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였던 재실은 현대 산업사회의 영향으로 붕괴되어 가고 있다.
 
묘직이나 산직은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천대받기를 싫어하여 나가버리기가 일쑤이다. 게다가 족인들의 숭조관념·문중관념·동족관념이 희박하여지고 제례 참가율이 낮아짐에 따라 재실의 폐허화는 속수무책인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인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조회순
2024.01.02
용정리 이로재(履露齋)
【향토】 이 재실은 오수면 용정리 용정마을 제각골 안쪽에 있다. 이로재(履露齋)는 효령대군의 증손인 춘성정의 차손 이경윤(李慶胤)의 재실로, 팔작지붕 위에 기와를 얹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전주이씨 문중에서 1940년에 지었다. 현판은 11대손 윤의가 썼고 6개의 주련이 있으며 앞에는 대문이 있는데 대문은 5칸으로 가운데가 솟을대문이고 양쪽에 2칸씩의 공방이 있다.
2024.01.03
【향토】 오수면 주천리 마을 안뜸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귀노재(歸魯齋)는 곡성 현감을 지낸 곽득형(郭得亨)의 재실로 팔작 기와집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현풍 곽씨 문중에서 1922년에 지었다. 귀노재 편액은 효산 이광열이 썼으며, 건물 안에는 3개의 현판과 6개의 주련이 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삼계사(三溪祠)가 있다.
2024.01.03
주천리 호산재(壺山齋)
【향토】 이 재실은 오수면 주천리 상지밑 마을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대산재(臺山齋)는 호은(壺隱) 이수(李洙)의 재실로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원래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전주이씨 칠산군파(漆山君派)의 서숙(書塾)이었다고 한다. 1922년에 중수를 하 였으며, 솟을대문 위에는 취성문(聚星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동과 서쪽에 쪽문이 있다. 현판 9개와 주련이 6개가 있다.
2024.01.02
월평리 비봉재(飛鳳齋)
【향토】 이 재실은 월평리 성저마을 안에 있다.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장손인 13세손 이창권 씨가 관리하고 있는 재실이다. 1950년에 건축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현판 1개, 주련 4개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재실 앞으로 둔남천이 흐르고 4차선이 통과하는 교통 중심지이다.
2024.01.04
후천리 경의재(敬義齋)
【향토】 오수역에서 동계로 향하는 13번 국도상 삼계면 소재지를 지나 후천리 후천교를 건너기 직전 왼쪽 야산 동쪽 골짜기 작은 오류골 북쪽 기슭에 있다. 경의재(敬義齋)는 풍천 노씨(豊川盧氏) 문중의 재실로 조선개국 己未 후 8周甲이라고 적혀 있어 1919년에 지은 것이며, 팔작지붕 아래 겹처마를 두르고 최근에 강판기와로 교체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지어져 있다.
2024.01.03
수천리 흥학당(興學堂)
【향토】 이 재실은 신덕면소재지 수천마을 경로당 맞은편에 있다. 흥학당(興學堂) 이 지역에 거주하는 평산 신씨의 시조 장절공 신승겸의 25세손 신덕 입향조, 호조참의인 신보일(申寶一)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진 재실로 문중에서 1893년 10월 3일에 건립하였다.
2024.01.03
두월리 이로재(履露齋)
【향토】 옛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의 이공(李公)이 중봉(重峯) 조헌(趙憲) 등 여러 선비들과 함께 일시에 절개를 지켜 열열하게 의로운 이름이 천추에 빛나게 되었다. 우리 임금께서 임진년을 맞이하여 아경(亞卿)으로 추증하고 儘昇數也 그 후손 이종보(李鍾鳳)이 시를 지어서 그에 대해 적어 두었다. 내가 그 일에 대해서 듣고 장하다고 생각하여 그 운자(韻字)를 따라 부응하고자 한다.
2024.01.02
봉강리 영모재(永慕齋)
【향토】 이 재실은 성수면 봉강리, 임실~남원간 도로에서 좌측으로 봉강리 덕치 마을로 가다가 다시 좌측으로 약 1㎞쯤 가면 옥녀봉 중턱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진주 강씨의 선조 강위황(姜渭璜)의 재실로 순조 19년(1819)에 건립되었고, 광무 3년(1899)에 중수된 재실이었으나 전주~순천 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현 위치로 옮겨졌다.
 
◈ 최근등록순
2024.01.05
안하리 관경재(觀敬齋)
【향토】 이 재실은 지사면 안하리 매남 동쪽 언덕너머 관기리 쪽 기슭에 외따로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2개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선조 이덕겸(李德謙)의 재실로 성주 이씨 문중에서 1800년(?)에 세웠다.
2024.01.05
계산리 영사재(永思齋)
【향토】 지사면사무소에서 오수 쪽으로 가다가 중간 지점에 계산리 의암마을이 있으며, 마을에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영사재(永思齋)는 팔작 기와지붕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 구조로 양쪽에 공방이 있으며 현판이 5개 주련이 7개 걸려있다.
2024.01.05
사곡리 영모재(永慕齋)
【향토】 덕치면 사곡리 자경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함안조씨 사인공파의 재실로 입향조인 조평 선생을 위한 재실로 관리되고 있다.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팔작 함석지붕으로 비교적 튼튼하고 고풍이 서려 있으며 현판이 1개, 주련이 5개 걸려있다.
2024.01.05
사곡리 서륜재(叙倫齋)
【향토】 이 재실은 덕치면 사곡리 자경동에 있으며 경주 이씨(慶州 李氏)종중의 재실이다. 무인년 봄에 묵은(黙隱) 이규상(李奎祥)이 비로소 완성하고 현판을 썼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지붕은 함석으로 이어져 있다. 내실에는 6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2024.01.05
백련리 추모재(追慕齋)
【향토】 청웅에서 강진면 경계를 지나 첫 마을인 신기마을에서 백련산 쪽으로 1.5km쯤 가면 함양박씨 재실인 추모재(追慕齋)가 있다. 상량문에 단기4283년 庚寅 2월 13일 건립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시멘트기와 팔작지붕이며, 추모재기 등 4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추모재(追慕齋)’란 편액은 각을 하지 않고 써져 있는 상태로 박봉희의 낙관이 있다.
2024.01.05
백련리 영사재(永思齋)
【향토】 청웅에서 강진 방향으로 가다가 중간에 호국원을 지나 백련리가 있고, 백련리마을을 거쳐 북쪽으로 300m 정도에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영사재는 전주 이씨 재실로 통정공 10세조를 모신 재실로 상영(尙榮)의 10대조부이시다. 상량문을 보면 ‘숭정기원후 5무신 5월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08년에 세운 재실이며 문간 또한 단기 4316년이라고 적혀 있어 서기 1983년에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24.01.04
백련리 봉사재(奉思齋)
【향토】 청웅면 소재지에서 강진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에 첫 신기마을이 있고, 신기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봉사재(奉思齋)는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종중 재실로 ‘기자가 동쪽 땅에 봉해진지 3,045년째 계해 3월 12일’이라고 써져 있는 것으로 보아 1923년에 지은 것으로 보며, 팔작지붕아래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지붕은 시멘트 기와지붕이다.
2024.01.04
백련리 모의재(慕義齋)
【향토】 이 재실은 임실군 강진면 백련리 백련산아래 신기마을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걸려있다.
2024.01.04
덕천리 영덕재(永德齋)
【향토】 영덕재(永德齋)는 관촌면 덕천리 덕곡마을 안에 있다. 영덕재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전주이씨의 재실이다. 1921년 3월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편액은 성수 출신 이광의 선생이 썼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슬레이트 지붕이며, 건물 내에는 현판 1개가 걸려 있다.
2024.01.04
후천리 취수당(醉睡堂)
【향토】 이 재실은 임실군 삼계면 후천리 계림군사우 밑에 있는 위치해 있다. 경주 김씨 재실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이다. 현판이 1개, 주련이 2개 걸려있다.
2024.01.04
후천리 정양사(靜養舍)
【향토】 노동환 가옥은 오수에서 삼계면 소재지를 지나 후천리 후천교 건너 왼쪽의 작은 다리를 통과하여 교회 앞을 지나 올라가면, 뒷내마을 안 북쪽 산기슭에 있다. 노동환 가옥의 본채는 1986년 9월 9일 지방문화재자료 제11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팔작지붕 아래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본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사랑채와 문간, 그리고 오른쪽 뒤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지어져 있다.
2024.01.04
후천리 경의재(敬義齋)
【향토】 오수역에서 동계로 향하는 13번 국도상 삼계면 소재지를 지나 후천리 후천교를 건너기 직전 왼쪽 야산 동쪽 골짜기 작은 오류골 북쪽 기슭에 있다. 경의재(敬義齋)는 풍천 노씨(豊川盧氏) 문중의 재실로 조선개국 己未 후 8周甲이라고 적혀 있어 1919년에 지은 것이며, 팔작지붕 아래 겹처마를 두르고 최근에 강판기와로 교체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지어져 있다.
2024.01.04
홍곡리 쌍송당(雙松堂)
【향토】 삼계면 소재지에서 순창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홍곡리 괘평마을에 이르면, 마을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재실은 경주 김씨 쌍송당(雙松堂)파 계림군의 9세손인 김광석(金光奭)의 재실로서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토기와 건물로 양쪽에 방이 있고 가운데에는 대청마루가 있다.
2024.01.04
학정리 호산재(虎山齋)
【향토】 이 재실은 삼계면 학정리 사우시 마을 북쪽 끝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밀양 박씨의 선조 박이룡(朴爾龍)의 재실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주련이 4개 걸려있다.
2024.01.04
학정리 영모재(永慕齋)
【향토】 이 재실은 삼계면 학정리 용수골 골짜기 서편 기슭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영월 엄씨(寧越 嚴氏)의 선조 십성재(十省齋) 엄준목(嚴峻睦)의 재실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걸려 있다. 1978년 세웠으며 오른쪽 언덕에 ‘通政大夫刑曹參議仁樂堂嚴公峻睦景墓碑’가 서 있다.
2024.01.04
학정리 성수재(聖壽齋)
【향토】 이 재실은 삼계면 학정리 용수골 골짜기 동편 기슭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밀양 박씨 문중의 재실이다. 1927년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주련이 4개 걸려 있다.
2024.01.04
죽계리 귀후재(歸厚齋)
【향토】 이 재실은 삼계면 죽계리 대판이 마을 북쪽 끝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남원 양씨(南原 梁氏) 문중의 재실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이다. 현판은 10개가 걸려있으며 주련은 5개이다. 4320년(1987)에 중수하였는데 대청 안에 중건기(1931)가 걸려 있다.
2024.01.04
어은리 화수당(花樹堂)
【향토】 삼계면 어은마을에 있는 화수당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청주한씨의 재실로 팔작 기와지붕에 정면 5칸 측명 2칸으로 1940에 지었다고 한다. 담장은 흙돌 담장인 조선식담장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주련이 4개가 있고 안에는 현판 4개가 걸려 있다.
2024.01.04
어은리 영모재(永慕齋)
【향토】 이 재실은 삼계면 어은리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재실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주련이 5개 걸려있다
2024.01.04
어은리 명성재(明盛齋)
【향토】 오수역에서 동계로 가는 13번 국도에서 삼계면 소재지 못미처 군수 이기방 선정불망비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명성재(明盛齋)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연안김씨(延安金氏)의 선조 판결사 만은(晩隱) 김벽(金壁)의 재실로 팔작지붕 아래 겹처마를 두르고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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