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이후 함대 재건을 어느 정도 진행한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아키의 일본 수군과 정면으로 교전한 전투. 절이도는 현대의 전남
고흥군 거금도 지역이다.
1598년 8월 20일(음력 7월 19일) 도도 다카토라와 가토 요시아키가 이끄는 일본 수군은 당시 조선 수군 통제영이 있던 고금도에 대한 기습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사전 정찰로 조선 수군은 적의 기습 시도를 파악하였고, 거금도-녹도 인근에 함대를 배치, 일본 함대에 대한 역공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전선 50여 척을 격침시켰다.
특이하게도 이 전투는 이순신이 집필한 난중일기에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조선왕조실록 등 다른 사료에는 제대로 기록되어 있는 전투이며, 실록에서는 왜선 50여 척을 분멸하고 수급 71개를 베었다는 기록이 있다. 해당 부분을 다룬 난중일기 초고가 보관상의 문제로 망실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 수군이 결성된 이후의 첫 전투이나, 당시 명 수군의 지휘관인
진린은 전투에 대한 의욕이 낮아서 함대를 출동시키지 않고 조선 수군 함대만을 출격시킨 채 전황을 관망하였다.
진린은 자신의 전공이 없어 애꿎은 부하들에게 역정을 내었으나, 이순신이 수급 40급을 나눠준다. 그리고 진린은 조선 수군이 조정에 보고할 때 26급만 베었다고 기록하게 하였다. 그러나 진린의 전공을 보고 받은 명나라는 '진린이 그럴 리가 없는데'라며 조선 조정에 사실이냐고 물어보는데, 이에 이순신이 장계를 두통 작성, 한통은 진린의 전공을 기록한 장계(즉, 거짓말), 한통은 사실을 기록한 장계를 올려 무사히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