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92]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경성부민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본시 전주에 살다가 죄를 지어 회령으로 유배되었다. 뒤에 회령부의 아전으로 들어가 재산을 모았으나, 조정에 대해서 원한이 많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加藤淸正)가 함경도로 침입하여 회령 가까이에 이르자 경성부의 아전으로 있던 작은아버지
국세필(鞠世弼), 명천아전
정말수(鄭末守) 등과 함께 부민을 선동, 반란을 일으켰다.
이 때 근왕병(勤王兵: 왕을 측근에서 호위하는 병사) 모집차 이 곳에 머무르고 있던 선조의 두 왕자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과
순화군(順和君) 이보 및 그들을 호종하였던 대신
김귀영(金貴榮)과
황정욱(黃廷彧)·
황혁(黃赫) 부자, 남병사(南兵使)
이영(李瑛), 부사
문몽헌(文夢軒), 온성부사
이수(李銖) 등을 그 가족과 함께 잡아 적진에 넘겼다.
이에 가토에 의하여 판형사제북로(判刑使制北路)에 임명되어 회령을 통치하면서
이언우(李彦祐)·
전언국(田彦國) 등과 함께 횡포를 자행하다가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의 격문을 받은 회령유생
신세준(申世俊)과
오윤적(吳允迪)의 유인에 떨어져 붙잡혀 참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