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49] 신라 출신 후고구려의 귀족이자 고려의 왕족으로 태조 왕건의 백부
왕평달의 아들이며
왕건의 사촌동생이다.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정종 즉위를 도운 공로로 광국익찬공신에 책록되었다. 본관은 개성(開城) 시호는 위정(威靜)
처음에 군부서사(軍部書史)가 된 뒤에 여러 벼슬을 거쳤다. 918년(태조 1)에 태조가 황폐한 평양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대도호부로 삼고 담당관원을 파견할 때 그 책임자로 등용되어 평양을 지키면서 안수진(安水鎭)·흥덕진(興德鎭) 등에 성을 쌓아, 그 공으로 여러 차례 승진하여 좌승(佐丞)이 되었다.
태조가 죽고 혜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서경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실력자가 되어 혜종의 이복동생 왕요(王堯: 뒤의 定宗)와 제휴하였다.
945년(혜종 2)에
왕규(王規)의 혜종 암살음모(
왕규의 난) 등 중앙의 정정(政情)이 어수선해지자 서경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수도에 들어가 왕규와 그 무리 300여 명을 제거하여 정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으며, 광국익찬공신(匡國翊贊功臣)으로 대승(大丞)이 되어 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호기위 태사 삼중대광 개국공(虎騎尉太師三重大匡開國公)으로 추증, 정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위정(威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