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 줄여서 경상좌수영(慶尙左水營)은 조선 시대 경상도의 동쪽에 존재하던 수군절도사영이다. 지휘관은 정3품 당상관인 수군절도사이다.
상세
본부에 해당하던 곳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일대. 다만 처음부터 여기 있던 것은 아니다. 경상좌수영은 동래현 부산포에 있었다가, 부산에 왕래하던 일본인들에 의해 군사와 장수의 정보가 샐 수 있다하여 1459년에 울산 개운포로 이전한다. 하지만 울산에 병영과 수영이 같이 있어 백성들의 부담이 심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1544년 동래 남촌 해운포(부산 수영구 수영동)로 돌아온다. 그리고 잠깐 감만이포(감만1동)로 이동 후 다시 1652년에 해운포로 돌아온다. 당시에는 해운포가 해운대부터 수영강 하구 일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1895년의 군제개혁 때까지 243년간 수영동에서 이동하지 않고 남아있게 된다.
수영구와 수영동, 수영강 등 수영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바로 이 경상 좌수영이다. 임진왜란 이전 왜구의 침입이 주로 섬이 많은 경상우도와 전라도 쪽에서 벌어졌기에 비교적 준비가 잘되어있었던 경상, 전라 우수영에 비해 전력이 약했다. 결정적으로 수영강은 모래톱이 많은 지역인데, 이 때문에 모래가 늘 퇴적되어 선박들의 입출항에 굉장한 장애가 있었다. 이 때문에 항구기능을 유지하는 데 항상 애를 먹었고, 이 때문에 다른 수영에 비해 규모가 크게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경국대전에는 수영에는 대맹선2척, 중맹선 7척, 소맹선 6척 등 총 17척의 군선이 배치되었고, 수군은 760명이 배치되었다고 나와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군사 배치양은 달라졌을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1692년에 이르러서는 좌수사 이만하가 수영을 크게 개축하면서, 성곽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이 개축으로 경상좌수영에는 객사(영파당), 동헌(관운당, 제승당, 운주헌 등), 비장청, 수성청, 길청 등 수십 채의 건축물이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1895년 군제개혁 이후로 관아 건물 상당수가 사라져 버린다.
1995년 수영구에서 수영사적공원으로 조성해서 경상좌수영의 터가 남아있다. 그렇기에 사적원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좌수영이 성으로 개축한 뒤에 4개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문 하나만 남아있다. 이 남문로 문루는 사라지고, 홍예문만 남아있다. 그나마 문을 지키라고 세워둔 석상인 박견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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