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 ~ 1642] 조선 후기에, 장령, 수찬, 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원(熙遠), 호는 명고(鳴皐).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8대손이며, 이경율(李景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감(李愖)이고, 아버지는 사인(舍人) 이진영(李晉英)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 지중추부사 신식(申湜)의 딸이다.
1621년(광해군 13) 유학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24년(인조 2) 사정에 출사하였으며,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637년 지평(持平)·정언(正言)·장령(掌令), 1638년 수찬(修撰)·집의, 1639년 필선·사간 등을 지냈다. 간관으로 있으면서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주화파로서 척화파
김상헌(金尙憲) 등을 공격하는 데에 앞장섰다.
1641년 말 선천부사로 있을 때에 명나라 상선과 밀무역하다가 청나라에 발각되어 의주에 구금되었다. 청나라 장군
용골대(龍骨大)의 심문으로 처형을 받게 되자, 구명책으로
최명길(崔鳴吉)·
이경여(李敬輿)·
신익성(申翊聖)·
이명한(李明漢) 등이 명나라와 밀통한다는 사실과 또 우리나라의 음사(陰事) 12조를 고하였다.
청나라 장군은 이계를 국가와 왕을 배신하는 자로 판단하고 우리나라에서 처단하도록 연락하였고,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 정석문(鄭錫文)을 보내어 1642년에 참수하였다. 문장과 시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