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 ~ 1148] 제1차 십자군 원정 이후 팔레스타인의 십자군 국가와 기독교 도시 등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모술의 아타베그인
장기가 에데사 백국을 점령하자 서유럽에서는 위기감이 조성되어 교황 에우제니오 3세의 호소로 십자군이 결성되었다. 당시의 명성 높은 설교가였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유럽 각지에서 십자군 참가를 선동했고, 프랑스의 루이 7세와 독일왕 콘라트 3세를 중심으로 많은 참가자들이 출정하였다.
그러나 주요 참가자들은 제각기 생각을 갖고 있었고 각자 행동했기 때문에 제2차 십자군은 큰 전과를 이룩하지 못하고 소아시아 등지에서 이슬람 군에게 패배했고 팔레스타인에서는
누르 앗 딘에게 패하고 다마스쿠스 공격에 실패하여,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