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0월 29일 경성 부민관(府民館)에서 250여명의 문인이 모여 결성한 총독부 어용문인단체이다. 발기인은
이광수(李光洙)·
김동환(金東煥)·
김억(金億)·
정인섭(鄭寅燮)·
유진오(兪鎭午)·
이태준(李泰俊)·
사토(佐藤淸) 등이었다. 창립총회에서 회장으로
이광수, 간사로
박영희(朴英熙)·
이기영(李箕永)·
유진오·
김동환·
정인섭·
주요한(朱耀翰) 등과 세 명의 일본사람이 선출되었다.
이 단체의 친일문화적 성격은 결성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우리들 문필(文筆)에 종사(從事)하는 자(者)는 무엇보다도 문필(文筆)에 의(依)하야 그 책임(責任)을 다 하여야 될 줄 압니다. 이에 조선(朝鮮)에 있어서 진실(眞實)로 시국(時局)의 중대성(重大性)을 인식(認識)하는 동지상합(同志相合)하야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를 결성(結成)하고 흥아(興亞)의 대업(大業)을 완성(完成)시킬 황군적(皇軍的) 신문화(新文化) 창조(創造)를 위하야 용왕매진(勇往邁進)코저 맹세(盟誓)하는 바입니다.”라고 한 데서 잘 드러난다.
이 단체는
1943년 4월 조선하이쿠작가협회(朝鮮俳句作家協會)·조선천류협회(朝鮮川柳協會)·국민시가연맹(國民詩歌聯盟) 등의 단체와 더불어 발전적인 해체를 하고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로 강화, 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