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독부(都督府)·독군부(督軍府)라고도 한다. 1919년 만주 왕청현 봉의동(汪淸縣鳳義洞)에서
최진동(崔振東)이 편성하였다. 편성 당시에는 6백여명의 병력으로 참모장에
박영(朴英), 대대장에
이춘승(李春承), 중대장에
이동춘(李東春), 소대장에
최문인(崔文仁)으로 조직되었다.
이 단체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과 연합하여 활발한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였다. 1920년
안무(安武)의 국민회군,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함으로써 총병력이 1천명을 상회하였다.
이 통합부대는 1920년 봄부터 주로 두만강 대안(對岸) 함경북도 지방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커다란 전과를 올렸으며, 6월에는 추격하여 오는 일본군을 봉오동에서 섬멸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를 겪은 다음 연해주로 건너갔던 최진동부대는 그 뒤 소련군의 배신으로
자유시참변을 겪었으며, 1923년 일부 병력을 이끌고 만주로 되돌아와서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