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9 ~ 1821] 조선 후기의 여류학자로 『
태교신기언해』의 저자이다.
본관은 전주이고, 조선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敬寧君)의 11대 손이다. 1739년에 아버지 이창식과 어머니 좌랑 강덕언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소학』, 『주자가례(朱子家禮)』, 『여사서(女四書)』 등을 학습하였다.
사주당이씨는 유한규의 네번째 부인으로 여류문장가로 유명했다. 영조의 경연관이었던 송명흠이 사주당에 대하여 “친척이 아니라 대면하지 못함이 한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언문지』를 펴낸
유희가 그녀의 아들이다.
빙허각 이씨의 어머니가 유한규와 남매지간으로 빙허각 이씨는 사주당이씨의 외숙모가 된다.
많은 저술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나 죽기 전에 아들 유희에게 『태교신기언해』만 남기고 모두 불살라버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경기도 용인의 한국외국어대학교 내에 사주당의 묘가 있다. 용인시에서 그 일대에 태교의 숲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