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 ~ 1869]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형조판서, 공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을 3번 연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은(景隱), 호는 하옥(荷屋).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중(金履仲)이고, 아버지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이며, 어머니는 심건지(沈健之)의 딸이다. 순조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누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19년(순조 19)에 생원이 되고 부수(副率)·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을 거쳐 1838년(헌종 4) 판관으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교리(副校理)·직각(直閣)·대사성·이조참의·공조판서·이조판서·한성부판윤·대사헌·병조판서·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1850년(철종 1)에는 우참찬·제학 겸 지실록사를 거쳐 총위영(總衛營)을 총융청(總戎廳)으로 개편, 총융사(總戎使)를 맡고 이어 금위대장 등 무직(武職)의 수뇌부를 관장하여 당시 혼란한 사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였다.
그 뒤 예조판서·형조판서·훈련대장·공조판서·호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세 번씩이나 보직되어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1862년 삼정문란(三政紊亂)으로 발생한 각지의 민란을 진정해보려는 의도에서 설립된 이정청(釐整廳)의 총재관(總裁官)을 맡기도 하였으나, 1864년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실권을 장악하자 실직에서 물러나 실록총재관으로 『철종실록(哲宗實錄)』 편찬에 참여한 뒤 영돈녕부사로 1866년 기로사에 들어갔다.
인품은 정량(貞亮: 곧으면서 맑음)하고 공평하였으나, 안동 김씨 세도정치시기의 핵심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역사에 끼친 영향이 컸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인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