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3 ~ 1242]
몽골 제국의 칸이자 장군으로,
차가타이 한국의 설립자이며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몽골 제국의 초대 황제 태조
징기스칸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칭기즈칸으로부터 몽골의 법령 야식의 수호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차가타이 한국”의 시조이자 차가타이계 국가, 차가타이 투르크, 차가타이어의 창시자이다.
1213년 금나라 원정에 출정, 1219년~1221년 칭기즈 칸의 화레즘, 사마르칸트 원정에 참여했다. 아버지 칭기즈칸으로부터 위구르 지방에서 서쪽으로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에 이르는 옛 카라키타이 제국의 초원, 즉 일리, 이식쿨호, 추강 상류, 그리고 탈라스 지역, 이란 북동부 지역을 답례로 물려받았다. 칭기즈칸 사후 그는 평생 동안 중앙아시아의 통치권자였으나, 그의 생전에는 칸을 자처하지 않고, 오고타이가 보낸 다루가치들이 행정권한을 행사했다.
차가타이는 주치의 출신 성분을 수시로 문제삼았고, 그와 갈등하였으며, 이는 후손 대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칭기즈 칸은 군사적 능력이 뛰어난 그 대신 툴루이와 오고타이 사이에서 후계자를 결정하게 되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유목생활을 계속했으며, 이로 인해 칭기즈 칸으로부터 몽골 법령의 관리자로 지정되어 “야삭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의 후예들은 차가타이 한국 해체 이후에도 여러 중앙 아시아의 소국을 통치했다. 위구르어로는 차가타이, 페르시아어로는 조크타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