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38] 요동 공손씨 정권의 2대 왕 공손강의 아들이며 3대 왕인 공손연의 형이다. 220~221년 경에 아버지인 공손강이 사망했을 당시에 그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인 공손공이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형의 지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이후 공손공이 집권하던 시기에 위나라 조정에 임자(任子)로 보내졌으며, 이후 위나라의 도읍인 낙양에 체류하며 사실상 볼모 생활을 하였다. 그 곳에서 혼인하여 처자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228년에 아우인
공손연이 공손공을 몰아내고 요동의 영주가 되자 그가 위나라에 모반을 꾀하고 있다며 수차례 표문을 올렸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공손황의 최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설이 있다. 『위략』에서는 공손연이 모반을 일으켰을 당시에 그 죄에 연루되어 있다가 결국 자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고는 아들들과 더불어 통곡하였다고 한다. 이후 공손연의 머리가 위나라 조정에 보내지자 위 명제는 공손황을 살려주고자 하였으나 신료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를 죽이게 되었다. 한편 『삼국지』 고유전에서는 위 명제가 그를 저자거리가 아닌 옥에서 죽이고자 하여 공손황과 그 처자에게 금가루가 들어간 독주를 먹이고는 관과 의복을 내어 시신을 매장하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