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본은 이른바
청어총해(淸語總解) 4종 20권 가운데 하나로 《
삼역총해(三譯總解)》·《
청어노걸대(淸語老乞大)》·《
팔세아(八歲兒)》 등과 함께 1703년(숙종 29)에 개간(開刊)되었다. 《소아론》은 《팔세아》와 함께 그 뒤 1777년(정조 1)에 검찰관 김진하(金振夏)와 서사관(書寫官) 장재성(張再成)에 의하여 사역원(司譯院)에서 다시 고쳐진 후 간행되었다.
오늘날에는 이 중간본만 전하는데, 이를 《통문관지》 등에서는 신석소아론(新釋小兒論, 목판본 1책)이라 하고 있다. 말미에 이담(李湛)의 《팔세아》와 《소아론》 2책의 출간에 부친 후지(後識)가 있다. 《소아론》 초간본이 간행된 경위는 《삼역총해》 등의 간행경위와 같다. 《소아론》과 《팔세아》는 여진문자로 된 여진학 교재로 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이라는 점만 다르다.
《통문관지》 권1 관제(官制)를 보면 1667년(현종 8)에 여진학이 청학으로 이름이 바뀌는데(康熙丁未女眞學改稱淸學), 이는 공식적인 개명이고 만주자를 사용하는 실질적인 청학은 1630년대에 비로소 시작한다. 우리나라 여진학에서 다룬 여진어와 만주어가 반드시 동일한 방언의 계승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같은 언어의 계승이라 볼 수 있다. 1703년에 개간된 《소아론》이 들어 있는 이른바 《청어총해》 20책은 《통문관지》 권8 집물(什物)의 기록에 따라 활자본으로 알려져 있으나, 삼역총해서를 보면 이들은 목판본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책은 현재 규장각도서에 2책, 대영도서관(The British Library)과 고마자와대학도서관(駒澤大學圖書館), 아라아시문고(濯足文庫)에 각각 1책이 보존되어 있고, 《재불한국관계문헌목록》에도 《소아론》 1책이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도서 가운데 한 책이 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