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양양의 관노 출신
장악원(掌樂院) 악공(樂工). 조선 중기의 명의
허임의 아버지. 대금을 잘 불었다.
허억봉의 8대조는 세종대왕 때 좌의정을 지낸 허조(1369~1439)이며, 허조의 아들인 허후(예조판서)는 수양대군의 왕위찬탈과정에서 처형당했으며 이로 인해 집안이 죽임을 당하고 노비가 된 것으로 세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관노였던 허억봉은 10대 중반에 대금 연주가 뛰어나 악공에서 장악원(지금의 국립국악원)의 최고 지휘자인 전악으로 십 수년을 재직하였다. 조선 명종 16년에 장악원 첨정인 안상이 목판본 악보인 금합자보(보물 제283호)를 제작하면서 대금 악보인 적보를 허억봉에게 작성하도록 하였으며 천재 음악가로 칭송되었다. 전악에 오르며 면천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허임도 천인의 신분을 벗어나 침술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인용】WIKI강원
문신 정사룡(鄭士龍)의 문집린 『호음잡고』의‘허억봉의 대금연주’라는 시에는 “재주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르렀지만 자네 오직 독보적이라”며 허억봉을 극찬했습니다. 허균의 스승 손곡 이달도 장악원에서 대금을 부는 허억봉을 보고 ‘악사 허억봉에게 주는 시’를 칠언절구로 읊었습니다.
허억봉은 당시 예조판서 등을 지낸 양반 김귀영 가(家)의 사비(私婢)와 결혼하여 허임을 낳았습니다.
오희문이라는 양반사대부가 쓴 일기 쇄미록에 "억봉은 전악(典樂)으로 기공(妓工)을 데리고 남고성의 집에 와서 학춤을 추었는데 그 때 손에 박달나무 판을 들고서 여러 기공의 앞에 서서 공정(公庭)에서 훨훨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억봉은 요즈음 말로 만능 예능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양반집의 종과 결혼하여 허임이라는 침구의 대가를 낳은 것입니다.
허억봉은 1561년 안상이 지은 목판본 악보인 금합자보(琴合字譜) 중에 대금악보인 적보(笛譜)를 맡아 악보를 썼습니다. 이 책은 1572년(선조 5년)에 간행됐습니다. 안상은 금합자보의 편찬 경위를 밝히는 서문에서 악공 허억봉은 적(笛, 대금)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고 소개했습니다.
허억봉은 10년 동안 장악원의 전악을 했고, 그 뒤에도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홍려시의 악사로 활동했습다. 그는 거문고도 잘 했고, 퉁소도 불었으며 박(拍)을 들고 학춤도 추었습니다.
【인용】허임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