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들 중에서도
석가모니를 화장하여 나온 것을 진신사리(眞身舍利)라고 부른다. '부처의 진짜 몸(진신眞身)에서 나온 사리'라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입멸(入滅)하시고 나서 장례는 부처님의 유훈에 따라 재가 신자들에 의해 치러졌습니다. 경전에 의하면 화장을 치르고 난 뒤 남은 유골을 수습하니 8말 8되가 나왔답니다. 정확한 도량형을 알 수 없어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상당히 많은 양의 사리가 나온 것은 분명합니다. 이 유골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부처님의 입멸 소식을 전해들은 여러 나라에서 각각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유골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지요. 일부 국가에서는 전쟁불사를 외치기도 하였답니다.
결국 한 수행자의 중재로 여덟 나라에 사리가 배분되고 이것으로 탑을 세워 공양하도록 했는데 이 탑들을 근본8탑(根本八塔)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사리를 담았던 병을 대신 넣어 만들어진 9번째 탑, 이어 다비식에 나왔던 재를 가지고 만든 10번째 탑이 초기에 존재했던 사리탑의 모습입니다. 탑은 그 후에도 계속 만들어졌는데 부족한 사리 대신 의발, 족적(足跡) 등으로 탑을 만들기도 했고 나중에는 경전과 불상도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에 깊이 귀의했던 인도의 아쇼카 대왕은 나중에 근본8탑을 해체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사리를 8만4천개로 나누어 많은 곳에 탑을 세웁니다.
《대당서역기》에는 당나라 때의 현장스님이 150과를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져왔고, 의정스님이 300과를 모셔왔다고 전합니다. 우리나라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정골 100과를 모셔와
황룡사,
통도사 등에 봉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리를 최초로 봉안한 탑은 황룡사의 대탑으로 알려져 있지만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불자님이 질문하신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지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