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가야국(加耶國) 시조의 어머니로 가야산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용된 「석이정전」과 「석순응전」의 간략한 기록밖에 없어 정견모주에 대해 세부적으로 알기 어렵다.
「석이정전」에 따르면 정견모주는 가야 산신이며 천신
이비가 혹은 이비가지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와
금관국 시조를 낳았다고 한다. 「석순응전」에는 대가야의
월광태자(月光太子)가 정견(正見)의 10대손이라고 한다.
가야산 합천 해인사의 국사단, 합천 해인사 홍제암의 정견각 등에는 지금까지도 정견모주 혹은 정견천왕 등 산신에 대한 전승과 신앙이 남아 있다.
정견모주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신라 말 최치원의 저술에서만 확인된다. 대가야와 금관국의 시조를 형제로 인식한 점이 특징이고, 모두 천신과 산신의 결합을 통해 탄생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정견모주설화가 가야 당대부터 존재한 것인지, 혹은 가야 멸망 이후 유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대가야국의 시조인 뇌질주일(惱窒朱日)(
이진아시왕의 별칭))과 금관가야국의 시조인 뇌질청예(惱窒靑裔)(
수로왕의 별칭)의 어머니로 전해 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9세기 초에 해인사를 창건한 두 스님의 전기인 최치원의 「석이정전(釋利貞傳)」과 「석순응전(釋順應傳)」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즉 「석이정전」을 보면,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毗訶之)와 감응하여,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고 하였으며 「석순응전」에는 “대가야국의
월광태자(月光太子)는 정견(正見)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이뇌왕(異腦王)인데, 신라에게 혼인을 청하여 이찬(夷粲) 비지배(比枝輩)의 딸을 맞아 태자를 낳았으니,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8세손이다”고 하였다.
그런데 《삼국사기》 지리지, 고령군의 건치연혁 조에 “대가야국은 시조인 이진아시왕[일명 내진주지(內珍朱智)]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세 520년” 이라는 기록으로 월광태자가 곧 도설지왕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시대 정견모주를 모시는 사당인 정견천왕사(正見天王祠)가 해인사 경내에 있었고, 대가야국의 왕후인 정견(正見)이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정견모주는 설화상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과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어머니이다. 즉 가야국의 시조모로, 동시에 가야산신으로 숭앙되었다. 그러니까 대가야 왕실 세계(世界)에서 최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