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1 ~ 1555]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綏之(유지) 호는 탁청정(濯淸亭), 아버지는 광산김씨 예안 입향조인 농수(聾수) 김효로(金孝盧)로이며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양성이씨(陽城李氏)로 군수 지(持)의 딸이다.
부인은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김수홍(金粹洪)의 딸이다. 아들로 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로 불리는 김부인(金富仁,1512~1584),김부신(金富信,1523~1566),김부륜(金富倫,1531~1598)을 두었다
1525년(중종 20) 생원시 동방진사과에 2등 24인으로 합격하였고 무예에 정통하여 무과에 응시하였으나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드디어 문무 양시를 그만 두고 덕을 숨기고 임천(林泉)에서 살았다. “사람이 한 세상에 태어나 즐거워 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렸을 뿐이다.
어찌 꼭 세상의 명예를 따라야 하겠는가”라고 개탄하면서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에서 평생 독서하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다.
또한 성품이 호협(豪俠)하여 빈객을 좋아하여 정자를 수리 확장하고 손님을 맞아 즐기니 선비들이 이 고을을 지나면 반드시 찾아와서 즐겼고 비록 폐의파립(敝衣破笠)한 사람이라도 친절히 대접하고 옳지 못한 사람을 보면 준엄하게 꾸짖어 용서가 없었다.
그의 부친은 81세 모친은 90세로 장수하였는데 형인 緣은 벼슬길에 나아가고 아우인 그가 양친을 극진히 모셨다.
【인용】수운잡방연구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