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삼국사기』에 임실군은 백제의 임실군任實郡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지금도 백제 때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제 때 지명을 바꾸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는 곳은 임실군이 유일하다. 어찌 보면 통일신라 경덕왕 때 전통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꿀 때 본래의 지명을 지키겠다는 임실사람들의 강한 자긍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향토】만취정은 형조참의 예문관을 지낸 경주김씨 김위(金偉) 선생이 선조 5년(1572)에 지은 정자이다. 만취정은 선조5년(1572)에 짓고 선조23년(1590)에 단청을 하였다. 순조14년(1814)과 순조34년(1848)에 중수되었으며, 상량에 '숭정기원후정유'(丁酉)라 씌어 있는 것을 보아 1897년에도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토】이상으로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임실의 선사와 고대문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북 임실군은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 산줄기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수계상으로는 섬진강 상류지역에 속한다. 섬진강 본류와 지류를 따라 크고 작은 평야와 구릉지가 발달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향토】영벽정(暎碧亭)은 관촌면 덕천리 사선대 입구 산자락에 있다. 팔작지붕 아래 정면 2칸, 측면 2칸의 구조로 1935년에 지었으며, 영벽정기 등 9개의 현판이 있다. 누각 왼쪽에는 1989년도에 후손들이 청주인 한동석이 찬(撰)을 하고 김해인 김호균이 글씨를 써서 세운 ‘영벽정기적비’가 있고, 그 뒤편 바위에 영벽정을 창건한 기념으로 단기 4268년(1935) 乙亥 7월에 창건자 명단을 새긴 암각서가 있다.
【향토】덕치면 물우리 섬진강변에 세워진 월파정(月波亭)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정교한 조각과 우아한 선, 화려한 단청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선경(仙境)을 빚어놓고 있다. 특히 섬진강 맑은 물이 급류로 흐르다가 바위 사이를 감돌아 월파정 아래에 이르면 소(沼)가 되어 유유자적하며, 강기슭의 기암괴석과 천 년 묵은 낙락장송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연산하게 하고 있다.
【향토】청웅에서 강진면 경계를 지나 첫 마을인 신기마을에서 백련산 쪽으로 1.5km쯤 가면 함양박씨 재실인 추모재(追慕齋)가 있다. 상량문에 단기4283년 庚寅 2월 13일 건립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시멘트기와 팔작지붕이며, 추모재기 등 4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추모재(追慕齋)’란 편액은 각을 하지 않고 써져 있는 상태로 박봉희의 낙관이 있다.
【향토】청웅에서 강진 방향으로 가다가 중간에 호국원을 지나 백련리가 있고, 백련리마을을 거쳐 북쪽으로 300m 정도에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영사재는 전주 이씨 재실로 통정공 10세조를 모신 재실로 상영(尙榮)의 10대조부이시다. 상량문을 보면 ‘숭정기원후 5무신 5월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08년에 세운 재실이며 문간 또한 단기 4316년이라고 적혀 있어 서기 1983년에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향토】이 재실은 삼계면 죽계리 대판이 마을 북쪽 끝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남원 양씨(南原 梁氏) 문중의 재실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이다. 현판은 10개가 걸려있으며 주련은 5개이다. 4320년(1987)에 중수하였는데 대청 안에 중건기(1931)가 걸려 있다.
【향토】오수역에서 동계로 가는 13번 국도에서 삼계면 소재지 못미처 군수 이기방 선정불망비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명성재(明盛齋)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연안김씨(延安金氏)의 선조 판결사 만은(晩隱) 김벽(金壁)의 재실로 팔작지붕 아래 겹처마를 두르고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향토】삼계면 어은리 표지석을 따라 직진하여 마을을 들어가기 전 제각골에 있다. 귀후재(歸厚齋)는 이 지역의 청주 한씨 문중의 재실로 팔작지붕 아래 겹처마를 두르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현판이 5개 주련이 6개 걸려있다. 동남으로 작은 출입문이 있고, 솟을대문에는 수덕문(修德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으며, 석촌 윤용구가 쓴 귀후재 편액이 걸려 있다. 1931년에 중건되고 1987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향토】이 재실는 삼계면 봉현리 숙호마을 서쪽, 세심리와의 경계인 능선 끝, 길가 언덕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조양 임씨(兆陽 林氏)의 선조 국헌(菊軒) 임옥산(林玉山)의 재실이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2개 주련이 5개 걸려있으며 4304년(1971)에 지었다.
【향토】오수역에서 동계로 향하는 13번 국도상 삼계면 진입 후 삼은, 뇌천표석에서 좌회전하여 전주 광양 간 공사현장으로 나뉘는 갈림길 정면 둥근 형태의 집 옆 소로를 따라 밭과 숲을 500여m 헤치고 올라가야 있다. 추원재(追遠齋)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풍산 심씨의 입향조 찰방농와(察訪 聾窩) 심언통(沈彦通)의 재실이다.
【향토】사오재(思五齋)는 이 지역 해주오씨 입향조 오흥윤(吳興胤)의 재실로 삼계면 삼은리 오괴정 건너편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편액은 해평 윤용구가 썼으며, 글씨를 액자에 넣고 유리를 끼워 보존하고 있다. 사오재의 상량문에는 ‘遯庵南下 426甲戌春 2월 8일 壬辰五時入柱同月甲辰申時 上樑’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934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실(任實)이란 지명은 백제 때는 잉힐군(仍肹郡)이었으며 통일신라 때에 임실군이 되었다. 【임실】은 한자 취음으로 "임"은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 "실"은 실(谷:마을)로 '서울'처럼 순우리말로 전해지는 지명이다. 고려때는 남원부에 속하였다가 고려 명종(明宗)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조선에서는 태종(太宗) 13년에 준례에 따라 현감(縣監)을 삼았으며, 중종(中宗)때에는 임실(任實)과 운수(雲水)로 불리었다.
임실군은 동쪽으로 진안군, 장수군, 남원시 서쪽으로는 순창군, 정읍시, 북쪽으로는 완주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와는 29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동부에 소백 산맥, 북서부에 노령 산맥이 뻗어 산지가 많으며, 동부에서 남북으로 이어진 골짜기를 따라 분지가 발달하였다. 북서부에 섬진강 상류가 흐르고 있으나 넓은 평야가 발달하지 못하였고, 섬진강 다목적댐의 건설로 넓은 갈담 저수지가 생겼다. 기후는 남부 내륙형으로 다우 지역에 속한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쌀, 콩 외에 깨가 특산물이다. 그 밖에 누에고치, 토종꿀, 낙농 제품, 한지, 고랭지 채소의 생산이 활발하다. 전라선 철도와 국도 및 남원군을 통하는 올림픽 고속 도로가 있어 외지로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267호로 지정된 임실 진구사지 석등 및 이도리 석불 입상, 해월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