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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盧武鉉)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 지식지도
◈ 지식지도
노무현 (盧武鉉) 노무현 정부 김대중 이명박 김영삼 노태우 박정희 윤보선 이승만 전두환 최규하 박근혜 문재인 이희호 대한민국 대통령 부림사건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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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 공공기록물 헌법재판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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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 개) [모두보기]
◈ 인기순 (1 ~ 4 위)
2019.11.05
【정치】 정운천 의원, 하늘에 계신 노무현 대통령 생각해 차세대 원전 APR+ 살려내야! 【정운천 (국회의원)】
2019.10.29
【정치】  
2019.10.28
【정치】  
2019.10.04
【정치】  
◈ 등록순
2019.11.05
【정치】 정운천 의원, 하늘에 계신 노무현 대통령 생각해 차세대 원전 APR+ 살려내야! 【정운천 (국회의원)】
2019.10.29
【정치】  
2019.10.28
【정치】  
2019.10.04
【정치】  
2019.10.04
【정치】 안녕하세요. 정의당 대표 심상정입니다. 오늘은 10·4 남북정상 선언 1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뜻 깊은 자리를 준비해 주신 노무현 재단 유시민 이사장님과 서울특별시 박원순 시장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님과 통일부 김연철 장관님 등 주최 측에 축하와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대변인실  】
2019.10.04
【정치】  
2019.10.01
【정치】 [보도자료] 심상정 대표·윤소하 원내대표, 4.3 유족회 간담회 및 4.3특위 위원장 임명식 인사말 【정의당 (정당)】
2019.09.10
【정치】 “장관후보자 겨눈 칼날, 검찰 내부에도 엄정히 들이대야” 【강병원 (국회의원)】
2019.09.04
【정치】 오늘 여기 올라오니까 감회가 깊다. 제가 평생 딱 한 번 해본 일이 있다면, 이 땅을 경매한 것이다. 500평인 이 땅이 경매로 나왔는데, 우리가 얼마를 써야 낙찰 받을 지 알 수 없어서 여러 자문을 구해서 두 번에 걸쳐 경매를 했다. 첫 번째 땅이 경매에서 낙찰되고 나니, 노무현 재단에서 여기에 기념센터를 짓는다는 것이 알려져서 그 이후에는 입찰이 더 어려웠다. 그 땅을 입찰하지 못하면 이전에 구매한 땅도 용도가 없어지기 때문에, 꼭 사려고 그 때는 더 금액을 높게 써 넣었다. 두 번을 다 낙찰을 받아서 이 땅이 확보되고 나니, 아까 보신 것처럼 이렇게 창덕궁이 보이는 위치에 좋은 건물이 들어설 수 있어서 굉장히 가슴 뿌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기공식에 참석하니까 보람차다. 그동안 준비하신 유시민 이사장님과 천호선 센터장님, 고재순 사무총장님, 그리고 노무현재단 회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9.08.16
【정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서거10주기 추모사진전 개막식 모두발언 【더불어민주당 (정당)】
2019.08.16
【정치】 여러분 이렇게 뵙게 되어서 대단히 반갑다. 어제는 광복절 74주년 행사가 있었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그 의미가 남다르게 컸다고 생각한다.
2019.05.20
【--】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10주기를 맞아 20일 저녁 직원들과 추모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을 관람하고 청년창업가게에서 내부 소통행사를 가졌다.【행정지원과 (286-3320)】
▣ 참조 카달로그
◈ 주요 언급 키워드
더불어민주당 (7) 백과 국회 (4) 백과 2004년 (2) 백과 2007년 (2) 백과 김정일 (2) 백과 심상정 (2) 백과 이해찬 (2) 백과 정의당 (2) 백과
◈ 참조 키워드
김대중 (7) 백과 김영삼 (4) 백과 남북 정상 회담 (4) 백과 박근혜 (4) 백과 김정일 (3) 백과 대한민국 대통령 (3) 백과 문재인 (3) 백과 10.4 남북정상선언 (2) 2000년 (2) 백과 2000년대 (2) 백과 2001년 (2) 백과 2002년 (2) 백과 2004년 (2) 백과 2005년 (2) 백과 2006년 (2) 백과 2007년 (2) 백과 2008년 (2) 백과 21세기 (2) 백과 김덕룡 (2) 김영춘 (2) 백과 노무현 정부 (2) 백과 노태우 (2) 백과 문재인 정부 (2) 백과 박정희 (2) 백과 윤보선 (2) 백과 이광재 (2) 이명박 정부 (2) 이승만 (2) 백과 이철 (2) 전두환 (2) 백과 최규하 (2) 백과
▣ 백과사전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1946년 8월 6일(양력 9월 1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창초등학교와 진영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업 성적이 우수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 1966년 졸업하였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어망 제조업체에 잠시 다니다가 그만두고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였다. 1968년 육군에 입대하여 1971년 만기제대한 뒤 그만두었던 사법시험을 다시 준비하였으며, 1973년 1월 동향인 권양숙(權良淑)여사와 결혼하였다.
 
1975년 네 번째 도전 끝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이듬해 5월 사직하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이후 한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81년 제5공화국 정권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釜林事件)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학생·노동자 등의 인권사건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하고,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항쟁에 앞장섰다. 같은 해 대우조선에 다니던 이석규가 거리 시위 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자 사인 규명에 나섰다가 노동법의 '제3자 개입 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되어 변호사 업무 정지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1988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제안으로 정치에 입문하였고,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제5공화국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연한 논리와 날카로운 질문으로 증인들을 추궁하여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1990년 통일민주당·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대하여 '부도덕한 야합'이라 비난하며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과 결별하고 민주당 창당에 동참하였다. 이듬해 통합민주당 대변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한 뒤 제14대 대통령선거 민주당 청년특위 위원장, 물결유세단 단장을 거쳐 1993년 통합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이 되었고,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및 수도권 특별유세단 단장을 역임하고, 이듬해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당선 가능성이 높은 종로 지역구를 포기한 채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낙선 후 새천년민주당 부산 북강서(을) 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2000년 8월부터 2001년 4월까지 김대중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과 최고위원을 거쳐 2002년 초 국민경선제를 통하여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고, 2002년 11월 18일에는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인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국민 여론조사를 거쳐 단일 후보가 되었다.
 
이후 '낡은 정치 청산,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 등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운동을 펼쳤으며, 같은 해 12월 1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 2476만 141표 가운데 1201만 4277표(48.91%)를 얻어 1144만 3297표(46.59%)를 얻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뒤 2003년 2월 25일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2004년 초,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 비리 등에 대한 야당의 사과 요구를 거절하자 야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같은 해 3월 12일 국회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하여 소수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반대를 저지한 채 국회 본회의에 탄핵소추안을 기습상정하였고, 다수를 점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투표하여 찬성 193, 반대 2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킴으로써 국무총리 고건이 직무를 대행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전국 각지에서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잇따랐으며, 같은 해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같은 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에 대하여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두 달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하였다.
 
임기중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여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 유력 일간신문을 비롯한 언론과 대립하여 임기 내내 언론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지 못하는 등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친북좌파라는 비난을,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한편, 정치인생을 일관하여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청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도 공헌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미(對美) 외교에서는 '대등한 관계'를 추구하였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북한과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데 힘썼다. 대통령 임기 말인 2007년 10월 4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분단 후 처음으로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하여 평양을 방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남북관계 발전 및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발표하였다.
 
2008년 2월 24일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의 봉하마을로 귀향하여 오리농사, 마을청소에 참여하는 등 평범한 전원생활을 하는 한편,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였고, 건전한 토론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인터넷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을 개설하여 세상과 소통하였다.
 
그러나 퇴임할 때 대통령 재임시의 기록물 복사본을 가지고 귀향한 것과 관련하여 '국가기록물 무단유출'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검찰에 의하여 측근과 친형, 부인·아들·딸 등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으로, 2009년 4월 30일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같은 해 5월 23일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내용의 유서를 컴퓨터에 남기고 사저 뒷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서거하였다.
 
저서에 자전적 일대기인 《여보, 나 좀 도와줘》(1994)를 비롯하여 《노무현이 만난 링컨》(2001),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2002) 등이 있다. 2004년 영국 왕실로부터 최고훈장인 바스 대십자훈장(Grand Cross of the Order of the Bath;GCB)을, 2007년 카타르 정부로부터 독립대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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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 16. 노무현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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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